행동하는 신앙이 되려면
*** 행동하는 신앙이 되려면 ***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환경과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믿으며 염려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도 시인하고 마음으로도 믿지만, 생활 속에서는 온갖 걱정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세상의 변화, 자연의 재난, 전염병과 같이 우리 몸을 공격하는 병들,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등.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애써 두렵지 않은 척, 믿음이 강한 듯이 행동하더라도 마음 한켠에는 이런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쌓여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와 두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하셨는데,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동생인 마리아도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르다나 마리아는 부활의 확신까지도 가진 깊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빠이자 의지했던 나사로가 죽은 현실 앞에서는 다시 살려주겠다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조차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역사하심을 확신하지만, 여전히 습관처럼 생활의 염려가 앞서기도 하지요?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행동하는 신앙이 되겠습니까?
오늘 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신앙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사르밧 과부를 봅시다. 엘리야 선지자가 과부에게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이렇게 하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전혀 아니지요. 과부는 이방인이었고, 엘리야가 진정한 선지자인지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엘리야가 전했던 말씀인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을 확인할 길도 없었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듣고, 읽기도 하지만, 내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들과 마지막 식탁에 오를 음식까지 내놓으라는 엘리야의 말에 쉽게 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르밧 과부는 모든 의혹을 이겨내고 자신의 마지막 음식까지 엘리야 선지자에게 내놓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하여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걸었고, 순종하여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행동하는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믿음에 그치지 않고 순종하여 행동으로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신앙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과 순종의 길은 기도가 응답 되는 길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길입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