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대복칼럼

언어의 양면성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78회 작성일 2021-06-20 21:45

*** 언어의 양면성 ***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라는 옛말이 말이 있듯이 말은 사람을 이롭게 하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여 패망하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은 전혀 다른 양면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언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을 감동하게 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히브리서 13:15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의 입술로 나오는 찬송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며, 입술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잠언 18:20절에서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라고 했는데, 로마서 10:9-10절에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처럼 입으로 표현되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열매로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말라기 3:16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말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말을 분명히 들으시고 생명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십니다. 그래서 좋은 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은 영광과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선한 말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선한 말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명약입니다.

 

옛날 시골 장터에서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고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어느 장날, 젊은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한 양반이 말하기를 “어이 백정, 고기 한 근만 다오.”라고 하니 백정이 “예, 그러지요.” 하면서 솜씨 좋게 고기를 칼로 썩 베어 줬습니다. 또 다른 한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긴 하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기가 민망하여서 “박 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정이 “예, 고맙습니다.” 하더니 역시 솜씨 좋게 고기를 잘라 주는데, 먼저 양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자 먼저 양반이 소리쳐 따졌습니다.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양반 것은 나보다 배나 많으냐?” 그러자 그 나이 지긋한 백정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그야 손님 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 서방이 자른 것이니까 그렇지요.”

 

에베소서 4:29절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그렇습니다. 만일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긍정적이고 선한 말의 열매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과 영광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36-3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말을 가려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9-11절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그리스도인의 말은 덕을 끼치고 생명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4장에서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든 말을 들으시고 그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겠다.’라고 하십니다. ‘아이, 죽겠네.’라고 하면 죽게 될 것이고, ‘이 망할 놈’이라고 하면 망하게 될 것이고, ‘아이 짜증나.’라고 하면 죽도록 짜증나게 될 것입니다. 말은 나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인도자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양쪽에는 강도들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한 편의 강도는 죽는 순간까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편의 강도는 비방하는 강도를 책망하면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즉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은 지옥으로, 한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했습니다.

 

말(言語)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만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말에 대하여는 세상에서도 무서움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하는 말이지만 스스로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시편 141:3절에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말, 즉 언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마음이 분노하여 격한 감정이 되었을 때는 그 감정을 담은 무시무시한 독이 말 속에 포함되어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말은 영광과 생명의 길의 인도자가 되지만 독한 말과 남을 판단하고 헤아리는 악한 말은 자신의 인생을 파멸과 죽음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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