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대복칼럼

우리의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57회 작성일 2021-04-19 23:22

*** 우리의 때 ***

 

루이스(C. S. Lewis)가 쓴 ‘엄청난 이혼’(The Great Divorce)이라는 우화적 작품입니다. 이 내용은 지옥의 장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뜨겁고, 날마다 비가오고, 언제나 어두운 거리입니다. 하루도 거기에 살고 싶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빛나는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이 마련하셨습니다. 천국행 정기 버스(Shuttle Bus)를 보내신 것입니다. 매 시간마다 떠나기 때문에 기회는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버스 정거장에 시간 맞추어 나옵니다. 그러나 버스에 올라타지를 않습니다. 요금은 무료이기 때문에 누구나 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거장에 나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쪽으로 가면 못할 일이 많아진다. 남의 흉을 보던 즐거움도 없어지고, 약간의 재주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박수를 받고 보스 노릇할 만족도 없어진다. 지위노름이 거기서는 안 된다. 자랑할 수도 으쓱댈 수도 없는 세상에 무엇 때문에 가는가?…”

그래서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쯤 정거장에만 나왔다가 버스는 타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가지 예고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정기버스가 운행 중지 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매 시간마다 출발하는 천국행 셔틀 버스의 운행이 곧 멈춘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즉 우리도 매일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일과 상황들이 언제 갑자기 멈출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겠거니’ 하면서 경각심 없이 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우리랑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가자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기겁을 하며 만류했습니다. “선생님, 방금도 유대 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대답에서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라는 말씀을 생각해봅시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먼저 ‘한낮’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낮에는 두려워하여 숨거나 잠자는 때가 아니라, 한참 일할 때이며,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임을 의미합니다. 빛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고, 건강하고, 기회가 있고, 능력이 있는 때입니다. 반대로 밤이 올 터인데 인생의 밤은 불신의 때, 병약할 때, 기회가 사라지고 없는 때, 고통의 시기이며, 이 때에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지금은 빛이 있으므로 일할 때’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적인 이치로 볼 때에 ‘지금은 숨어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방금도”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나 자신들이 유대인들 앞에는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계시면서, 우리가 이해하는 환경과 상황과 여건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이런 내용은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긴 여행에 배고프고 피곤하여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간 후에 예수님은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생수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밝히셨습니다. 여인은 마을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서 왔으며 예수님께 음식을 드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받을 보라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제자들은 계절적으로 추수하려면 넉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마을 사람들의 영적인 추수의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환경과 여건을 보면서 일을 가늠합니다. 즉 사람의 관점은 눈에 보이고 이해되는 환경과 상황과 여건에 의하여 만들어집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계획과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적인 환경과 상황에만 매달려 삽니다. 우리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때를 조금이라도 짐작하려면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시각은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하며 성령께서 충만하실 때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떄를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일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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