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대복칼럼

자신과의 영적싸움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572회 작성일 2019-07-16 16:16
*** 자신과의 영적싸움 ***
 
어느 목사님이 자신의 상담 경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욕먹을 짓만 골라 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장난만 치고, 함부로 말하고, 도움이 될 만한 진지한 말은 웃어넘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마주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 되긴 틀렸다.’고 하는 청년이었는데 이 목사님이 불러서 조심스럽게 훈계를 시작했습니다. 인생과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만드신 목사님이 청년에게 진심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전달했습니다.
“난 우리가 천국에서 서로 못 만나게 될까봐 몹시 두렵네!”
목사님의 진지한 표정과 말을 듣자 청년의 표정도 생전 처음으로 진지해졌습니다. 그리고 청년은 진심어린 목소리로 목사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대답 했습니다.
“목사님!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셨기에 그러세요? 제가 뭘 도와 드릴까요?”
 
여러분, 이 상황이 이해되십니까?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농담인지 진담인지가 잘 분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못된 사람도 자신이 못된 사람이라는 것은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경험하시지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욕하는 사람이 자신도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생각 합니다. 옛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너 자신을 알라.”고 했겠습니까. 인간세상 학문의 최고봉을 철학이라고 하는데 철학의 기본이 ‘인간을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쉬운 듯 하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 병법에도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으며, 사서(四書)의 대학(大學)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성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싸움이 바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18-19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어지는 23-24절에서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
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탄식합니다. 그래서 자신과의 싸움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싸움이며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변명을 잘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빌미로 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변명의 대가(大家)가 있는데 바로 사울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 왕에게 명령하십니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3)
그런데 사울은 아각 왕과 짐승의 좋은 것을 죽이지 않고 남겨 왔습니다. 이것을 책망하자 사울이 백성들을 핑계로 변명했습니다. 사무엘상 15:13-15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하니라.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하는지라.”
이 변명은 20-21절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 변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순종과 불순종 이 둘의 결과뿐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불순종했다면 환경과 여건, 상황 여하를 막론하고 회개하는 길만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하여 변명하는 것은 전혀 무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환경과 상황, 여건은 하나님께서 조성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변명은 하나님을 탓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영적인 싸움은 나 자신 안에서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영적인 싸움에서 지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 영적인 싸움은 매일 매 삶의 순간마다 일어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르는 길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말씀 묵상과 기도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과 그 하수인들은 영적인 싸움의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며, 지원군의 통로가 되는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빼앗을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를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Total 606건 11 페이지 RSS
대복칼럼 목록
No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456
내가 향하는 푯대
  • 늘푸른
  • 01-14
  • 1545
455
주님과의 동행
  • 늘푸른
  • 12-30
  • 1349
454
우리의 소망
  • 늘푸른
  • 12-23
  • 1378
453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 늘푸른
  • 12-04
  • 1803
452
가장 중요한 선택
  • 늘푸른
  • 11-24
  • 1987
451
분별해야 하는 시대
  • 늘푸른
  • 11-20
  • 1420
450
죽음의 늪
  • 늘푸른
  • 10-04
  • 2000
449
내가 책임져야 할 인생
  • 늘푸른
  • 09-04
  • 1694
448
마지막 때 그리스도인의 영성
  • 늘푸른
  • 08-20
  • 2133
447
영적인 의무
  • 늘푸른
  • 08-13
  • 1687
446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 늘푸른
  • 08-05
  • 1613
자신과의 영적싸움
  • 늘푸른
  • 07-16
  • 2573
444
두려움과 기회
  • 늘푸른
  • 07-04
  • 1559
443
그리스도인의 오지랖에 대하여
  • 늘푸른
  • 06-26
  • 1862
442
주님과의 동행
  • 늘푸른
  • 06-18
  • 157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