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색 신앙
*** 보호색 신앙 ***
여러분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변명으로 일관합니까?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주된 공통점 중의 하나가 ‘자신의 잘잘못을 시인(是認)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하면 ‘so cool'(cool한 사람, 시원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소인배들의 특징 중 하나는 ‘책임전가(責任轉嫁)’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남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즘 말로 ‘오리발’입니다. 이런 오리발의 사람은 세상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은 설령 잘못을 했을지라도 용서받게 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데, 그 중요성이 영혼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과 두 번째 왕인 다윗이 그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참조, 삼상 13:8-12, 15:17-23/ 삼하 12:1-15). 그런데 오늘의 많은 교인들이 그 중요성을 모르고 카멜레온처럼 살아갑니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프랑스 생물학자인 ‘장 앙리 파브르(Jean-Henri Fabre, 1823,12~1915,8)’의 연구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파브르 교수가 날벌레를 연구하던 중에 신기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날벌레들은 자신의 앞에 날아다니는 것만 따라 다니다가 결국 굶어죽는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먹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앞에 것만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브르 교수는 더 신기한 현상도 발견했습니다. 곤충들 중에도 초목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는 ‘보호색 곤충’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철따라 보호색으로 갈아입는 보호색 곤충은 그 수명이 일 년도 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호색 동물들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변의 색에 자신의 몸 색깔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도 ‘보호색 교인’이 있습니다. 즉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자신의 신분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군에 있을 때에 보았던 것이 있습니다. 지휘관의 종교에 따라서 교회가 만원일 때가 있는가 하면, 절이나, 성당이 만원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지휘관에게 잘 보이려는 ‘보호색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보호색 교인이 많은 것은 신앙을 ‘자기 유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기독교인’이지만, 상황이 불리하게 되면 ‘입을 닫아버리거나’, ‘무종교’로 색깔을 바꿉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나, 하나님을 욕하거나 교회를 비난하며 따지는 사람 앞에서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covid19 펜데믹 상황에서 많은 교인들이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보호색을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호색 신앙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시인하는 늘푸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