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준
*** 하나님의 기준 ***
‘오마주(Hommage)’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단어는 프랑스어로 감사, 존경, 경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말은 ‘영상예술에서 어떤 작품의 장면을 차용함으로써 그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즉 자신이 영향을 받은 영화의 특정 장면을 자신의 영화에 응용하거나 존경하는 감독의 영화 장면을 자신의 영화 속에 삽입하여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감독의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도 있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장르에도 쓰이는 오마주는 존경을 표현하는 점에서 패러디나 표절과는 다릅니다. 문화, 예술, 기능 등 ‘모든 분야에서 존경하는 이들의 것을 발전 승화시켜 나가는 모든 것’들을 포괄적으로 '오마주' 라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서로 존경하고 모방하면서 발전해갑니다. 이런 면에서 영적인 오마주도 있습니다. 즉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존경하며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삶 모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그렇게 살다가는 바보 취급받거나, 손해만 겪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시대에는 육신적으로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영적으로는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세상의 본이 되고 예수님 닮기를 힘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육신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살면서도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점점 더 멀리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퇴보를 부추긴 주범 중의 하나는 ‘분별력의 부재’입니다. 자신의 인생 경험과 지식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3절 말씀에서 그 예를 보여줍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이 말이 왜 잘 못 되었습니까? 14절에서 지적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단 몇 초 앞에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일 년 후의 일을 장담하고 있으니 잘 못 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자기 확신’ 혹은 ‘분별력의 부재’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며, 매일 접하는 정보만 하더라도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엄청난 양입니다. 이런 때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을 영적인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은 마치 쉼 없이 불어대는 바람과 출렁이는 파도에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닻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념(理念)의 혼란과 정보(情報)의 홍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욕구, 질병과 건강에 대한 염려 등. 생각하고 대처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영의 생명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인류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잊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마음을 두고 따라야 합니다.
* 하나님의 기준 2를 이어서 보세요.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