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
*** 삶의 기준 ***
도자기 그릇을 판매하는 가게에 중년의 남자 손님이 왔습니다. 그 남자는 그릇의 이모저모를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그릇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그릇으로 가게에 진열된 그릇에 살짝 부딪쳐서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
“손님, 왜 그러십니까?”
그 남자는
“그릇을 부딪쳐 보면 그릇의 품질을 알 수 있어서 그렇소. 주인이신가 본데 그런 것도 모르시오?”
라면서 그릇들을 하나하나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더니 그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런, 아무리 그릇을 찾아보아도 마땅한 게 없군. 하나같이 품질이 별로야. 울리는 소리가 맑고 청아한 게 없어!”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남자의 행동을 보고 있던 주인이 그릇 하나를 주면서
“그럼 제가 쓰는 그릇으로 한 번 시험해 보시지요.”
그 남자는 반신반의하면서 주인이 준 그릇으로 다른 그릇들에 부딪쳐보았습니다. 그러자 한결같이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났습니다.
“어, 아까까지는 그릇들의 소리가 둔탁했는데…?!”
주인이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손님이 가져오신 그 그릇의 품질은 혹시 검증해 보셨나요?”
주인이 자신의 그릇으로 그 남자의 그릇에 부딪쳐 보자 둔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그릇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사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신앙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릇 가게에 왔던 그 남자처럼 자신이 철석같이 믿는 자신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도 그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세속화와 다원주의 신앙’이라는 심각한 아픔도 역시 이러한 자기 기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기준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비뚤어지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12: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라고 하시며, 누가복음 17:20-21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곧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기준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고 배척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신뢰하며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유다의 12번째 왕이었던 아하스는 하나님을 거역했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이 비록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지만, 이미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시고 계획하신 경영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경영하심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으므로 마땅히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믿을 수가 없어지며, 사랑이 식어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경영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삶의 기준으로 삼아서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실한 삶을 이루어갑시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