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목적
*** 우리 삶의 목적 ***
여러분은 요즘 시대적인 발전이나 과학의 발달이 신비롭지 않습니까?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우주 개척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문명의 발전을 어디까지 허용하실지 모르지만, 지금 과학의 세계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특히 온 세계가 놀라는 대한민국의 급속한 발전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이렇게 될 수 없다고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불과 4~50년 전만 하더라도 보릿고개로 불리는 끼니를 걱정하던 때였는데, 지금은 그때를 상상할 수 없도록 풍족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인구 5천만으로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이며, 세계국방력 순위는 6위입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삶의 질이 세계 상위 20% 안에 듭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감사하기보다는 ‘어렵다.’ ‘살기 힘들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일찍이 미국의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리스먼(Riesman, David)’은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라는 글에서, ‘소외를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인터넷 어느 블로그에 있는 글에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거리에는 쏟아지는 빗줄기만큼이나 수많은 군상들이 붐비고 있는데, 체온을 나누며 맞잡아 줄 손 하나 없다. 행복이라 여겼던 것들이 허상으로 다가와 이방으로 만나는 두 눈의 풍경. 잠실역으로, 석촌역으로, 무작정 발길 가는 곳으로 헤맸지만, 모두가 타인일 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감사하지 아니하며…절제 하지 못하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조급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과학의 발달과 문명의 발달은 지구촌을 가까운 이웃으로 만들고, 편리한 삶을 누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오히려 사람들의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거주하려는 ‘모태 본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는 감당하기 힘들도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생존하려는 의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회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만 만나는 기능적인 만남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가슴 시원한 웃음도, 가슴 찡한 감동도 별로 없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서로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식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마태복음 24:12절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은 말세에 이런 세상이 될 때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입니다. 이렇게 자기 위주로 살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쳐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목적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