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열정
*** 그리스도인의 열정 ***
어떤 성도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물에 빠지듯 풍덩 빠져 믿으시오. 거지 오쟁이 짊어지듯 믿으시오.”라고 했습니다(참고, ‘오쟁이’는 ‘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가방 같은 자루’를 말함). 즉 ‘아주 목숨 걸고 오직 예수께 푹 빠져라.’라는 표현입니다. 이용도 목사님의 표어는 “미치자. 크게 미치자. 예수를 위해 미치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코카콜라의 사장은 ‘내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은 피가 아니고 코카콜라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미쳤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앙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베스도 총독 앞에서 복음을 전할 때, 총독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했으며, 고후 5:13에서도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삶이든지 신앙의 삶이든지 열광적이 아니고는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런 열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설령 열정이 있다고 해도 자기를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남의 것 구경하듯 마음만 설레다가 마는 그런 신앙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얻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안에 푹 빠져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직후부터 3년 동안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연단하시고 훈련시키시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광야에서의 생활은 세상의 어떤 것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며,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며 훈련받은 것도 그러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의 환경이나 돈이나 권력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과 의를 의지하며 살아왔던 그 과거의 잔재를 씻어내고, 대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훈련의 자리가 광야였습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삭막한 바람이 이는 광야와 같은 삶을 통하여 성도가 세상을 의지하는 잔재를 씻어내십니다. 이런 인생의 광야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메마르고 건조한 광야 같은 삶은 광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길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새로운 삶의 자리이며, 도전과 열정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새로운 행복의 삶을 위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재물로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나의 온전한 마음을 드리며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열정입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