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는 세상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4,120회
작성일
2003-07-22 10:44
♡♥♡ 나를 기다리는 세상
주후 12세기 사라센제국 압바스(Abbas)조의 ‘칼리프 무스타르시드(al-Mustarshid, 1118-1135)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이집트에는 7년이나 계속되는 흉년이 몰아닥쳤습니다. 흉년이 극심하여 양식이 희귀하던 어느 날, 한 장관이 나귀를 타고 외출을 했습니다. 이 때 굶주린 백성들이 몰려와서 나귀를 빼앗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의 이 같은 행위를 괘씸하게 생각한 칼리프 왕은 나귀를 잡아먹은 범인들을 색출하여 모조리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수한 백성들이 까마귀처럼 몰려와서 교수대에 매달린 시체를 탈취하여 순식간에 다 먹어 버렸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사실 인간에게 자기가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던 군중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먹고 배부른 다음에 예수님을 강제로 임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가 무척 힘들었던 당시였으므로, 예수님의 이적을 경험한 관중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는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중요한 것을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고 해도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육신의 삶은 잠깐입니다. 지금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정말 잠시 후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기다리는 다음 세상은 어디일까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완전히 자신이 무시된 고통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선한 일에 힘쓰고 인내한 사람에게는 기쁨과 행복과 평안과 자유가 보장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미래의 삶을 보장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선한 일에 힘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성도들이 그 이유를 “좀 더 자신의 삶을 잘 준비하고 난 후에”라고 말합니다. 자식도 키워놓고, 돈도 벌고, 생활도 안정되고 등등이겠지요.
그런데 그 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나님께서도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실런지요!
아폴로 13호가 달을 향하여 발사되었을 때에 무언가 잘못되어 우주 비행사 세 사람이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타임지의 기사를 보았더니 아폴로 13호는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40%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놀랄 일입니다. 100%의 가능성을 가졌다고 해도 인간의 지혜는 다소 불안이 따르는데, 도대체 40%의 가능성을 가지고 어떻게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해설을 보니 100%의 가능성이 되기까지 연구해서 보내려면 단 한번도 로켓을 쏘아 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자신이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완벽하게 준비된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되었기 때문에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 두 제자들은 완벽이 아니라 하자 투성이였습니다. 차라리 주님께서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율법사 등 당시의 지도급 인사들이 더 완벽했습니다.
주님은 완벽하게 잘 준비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준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케 하시는 것입니다.
주후 12세기 사라센제국 압바스(Abbas)조의 ‘칼리프 무스타르시드(al-Mustarshid, 1118-1135)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이집트에는 7년이나 계속되는 흉년이 몰아닥쳤습니다. 흉년이 극심하여 양식이 희귀하던 어느 날, 한 장관이 나귀를 타고 외출을 했습니다. 이 때 굶주린 백성들이 몰려와서 나귀를 빼앗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의 이 같은 행위를 괘씸하게 생각한 칼리프 왕은 나귀를 잡아먹은 범인들을 색출하여 모조리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수한 백성들이 까마귀처럼 몰려와서 교수대에 매달린 시체를 탈취하여 순식간에 다 먹어 버렸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사실 인간에게 자기가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던 군중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먹고 배부른 다음에 예수님을 강제로 임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가 무척 힘들었던 당시였으므로, 예수님의 이적을 경험한 관중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는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중요한 것을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고 해도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육신의 삶은 잠깐입니다. 지금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정말 잠시 후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기다리는 다음 세상은 어디일까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완전히 자신이 무시된 고통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선한 일에 힘쓰고 인내한 사람에게는 기쁨과 행복과 평안과 자유가 보장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미래의 삶을 보장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선한 일에 힘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성도들이 그 이유를 “좀 더 자신의 삶을 잘 준비하고 난 후에”라고 말합니다. 자식도 키워놓고, 돈도 벌고, 생활도 안정되고 등등이겠지요.
그런데 그 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나님께서도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실런지요!
아폴로 13호가 달을 향하여 발사되었을 때에 무언가 잘못되어 우주 비행사 세 사람이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타임지의 기사를 보았더니 아폴로 13호는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40%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놀랄 일입니다. 100%의 가능성을 가졌다고 해도 인간의 지혜는 다소 불안이 따르는데, 도대체 40%의 가능성을 가지고 어떻게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해설을 보니 100%의 가능성이 되기까지 연구해서 보내려면 단 한번도 로켓을 쏘아 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자신이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완벽하게 준비된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되었기 때문에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 두 제자들은 완벽이 아니라 하자 투성이였습니다. 차라리 주님께서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율법사 등 당시의 지도급 인사들이 더 완벽했습니다.
주님은 완벽하게 잘 준비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준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케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