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향해야 할 방향
*** 내 마음이 향해야 할 방향 ***
에스겔 18:21-22절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 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4절입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래서 히브리서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시점’입니다.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가 하니라 지금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방법은 한꺼번에 많이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필요한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 6:34절에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라고 하십니다.
꼭, 이 한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누가복음 5:38-39절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자기 소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보수적 기질을 의미합니다. 마치 움직이는 공이나 물체가 계속 나아가려는 관성(慣性)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관습이나 자리를 지키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보다는 지금까지 해 오던 관습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도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나, 적극성을 띠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시면서, 조금 염려스러운 표현을 하셨습니다. ‘잘 숙성된 묵은 포도주의 맛을 아는 사람은 숙성되지 않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새로운 신앙보다, 지금까지 익숙해 있는 율법을 지키려 했습니다. 지금도 늘 하던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서 좀처럼 새로운 것이나, 열정적인 신앙으로의 변화를 싫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2-3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신앙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라며, 우리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심을 선언하십니다. 이 일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9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필요를 아시며, 매일의 삶에서 공급하시는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즉, 매일 우리 마음이 향해야 할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