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3,783회
작성일
2008-11-17 22:22
*** 있는 그대로 ***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은 봄대로 좋다.”
여름, 가을에 대해서도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에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니까..”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삶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춥고 게을러져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불고 노곤해서 싫다”
하며 '싫다', '싫다' 소리를 연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 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어디에 갖다놓아도 스스로 불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 속에 갇혀서 사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 즉 생명과 모든 소유까지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니다.
이런 사람은 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대하여,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이런 사람을 살피시며,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고서도 은혜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의 마음을 품으면 될 일도 안 되며,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대로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합니까?
*** 친밀한 교제 ***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 찬송, 예배, 봉사 등등. 이런 것이 신앙생활이겠지요? 주일이면 교회당에 가서 예배하고 성가대, 교사, 봉사당번으로 봉사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
그러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특별히 사람을 위하여 만드신 에덴동산으로 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저녁 서늘할 때면 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과 하와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지나가는 짐승을 보면서
“아담, 저 동물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겠나?”
“예, 사슴이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아담이 부르는 이름이 곧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아담아, 하와야! 잘들 지냈느냐?”
“안녕하세요? 하나님.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주님도 잘 지내시지요?”
“그래, 잘 지내고 있다. 아담, 넌 뭘 하고 있지?”
“예. 딸기밭에 물을 주고 있어요.”
“딸기가 잘 자라느냐?”
“그럼요, 하나님. 아주 잘 자랍니다. 벌써 한 광주리나 따서 하와가 그것으로 딸기 쨈을 만들었는 걸요.”
“그래?”
“예. 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하나님과 처음 사람은 친밀한 교제를 했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의 대화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들은 특별한 내용과 특별한 목소리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지금 목이 마릅니다. 물을 구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는 그렇게 종교적이고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작은 것부터 관심을 가지시고 자연스럽고도 친밀하게 대하셨습니다. 죄가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이 죄에 빠지면서부터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관계가 어색해지면서 종교적인 교제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더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친밀하게 대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대속의 제물로 주시면서까지 기쁨의 동산인 에덴에서의 처음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친밀한 교제와 동행을 원하십니다. 바로 당신에게 ➤ ♥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은 봄대로 좋다.”
여름, 가을에 대해서도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에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니까..”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삶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춥고 게을러져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불고 노곤해서 싫다”
하며 '싫다', '싫다' 소리를 연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 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어디에 갖다놓아도 스스로 불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 속에 갇혀서 사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 즉 생명과 모든 소유까지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니다.
이런 사람은 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대하여,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이런 사람을 살피시며,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고서도 은혜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의 마음을 품으면 될 일도 안 되며,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대로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합니까?
*** 친밀한 교제 ***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 찬송, 예배, 봉사 등등. 이런 것이 신앙생활이겠지요? 주일이면 교회당에 가서 예배하고 성가대, 교사, 봉사당번으로 봉사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
그러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특별히 사람을 위하여 만드신 에덴동산으로 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저녁 서늘할 때면 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과 하와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지나가는 짐승을 보면서
“아담, 저 동물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겠나?”
“예, 사슴이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아담이 부르는 이름이 곧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아담아, 하와야! 잘들 지냈느냐?”
“안녕하세요? 하나님.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주님도 잘 지내시지요?”
“그래, 잘 지내고 있다. 아담, 넌 뭘 하고 있지?”
“예. 딸기밭에 물을 주고 있어요.”
“딸기가 잘 자라느냐?”
“그럼요, 하나님. 아주 잘 자랍니다. 벌써 한 광주리나 따서 하와가 그것으로 딸기 쨈을 만들었는 걸요.”
“그래?”
“예. 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하나님과 처음 사람은 친밀한 교제를 했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의 대화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들은 특별한 내용과 특별한 목소리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지금 목이 마릅니다. 물을 구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는 그렇게 종교적이고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작은 것부터 관심을 가지시고 자연스럽고도 친밀하게 대하셨습니다. 죄가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이 죄에 빠지면서부터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관계가 어색해지면서 종교적인 교제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더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친밀하게 대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대속의 제물로 주시면서까지 기쁨의 동산인 에덴에서의 처음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친밀한 교제와 동행을 원하십니다. 바로 당신에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