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을 다 걱정한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3,329회
작성일
2011-02-16 14:24
*** 별 것을 다 걱정한다. ***
이 글을 쓴 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깊은 고통 속에서 주님을 만난, 그 아름다운 생명의 만남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주님!
내가 이토록 고통 속에서 주님을 만나 죄송합니다. 내가 걸어온 지난 생애가 주님 보시기에 심히 괘씸하였지요? 미우셨지요? 못 마땅한 일 많이 했지요? 그러기에 나에게 이 병을 허락 하신거죠.?
- 사랑하는 종아,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로, 너의 피보다 더 많은 피로 너를 사랑한다. 내게는 괘심이나 미움이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혹 있다면 그것 또한 사랑보다 더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나사로에게 준 질병, 그리고 죽음까지 사랑하는 바울에게 사탄의 가시까지 허락한 것처럼 그렇게 널 사랑한다.
주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나를 정말 일찍 데려가실 겁니까? 그것도 중년에 구순 노모, 혼기 앞둔 자녀, 세상모르는 아내, 그 일보다 더 교회를 위해 계획된 일들, 아직도 불타는 전도의 열정들, 피 토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어찌하라고요.
- 사랑하는 종아, 별것을 다 걱정한다. 너의 소원이 뭐냐? 네가 늘 부르는 찬송을 잊었느냐?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아니냐? 내가 너에게 이래도 저래도 복을 주었도다. 살아도 죽어도 복, 나가도 복, 들어와도 복, 건강해도 복, 병들어도 복, 성공해도 복, 실패해도 복, 이것이 주 안에서의 복이 아니냐! 너의 생명은 의사의 손에도, 병마의 손에도, 운명의 손에도 있지 않고, 더더욱 너의 손에도 있지 않고, 오직 생명은 내 손안에 있다. 네가 왜 그것을 걱정하느냐?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주어진 시간 동안 너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라. 너의 모든 관심은 희망에 두고 네 영역밖에 것은 내게 맡겨라.
주님!
무엇보다 어린 양떼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고통, 세상 사람들의 오해들, 나를 아끼는 모든 이들의 사랑과 낙심, 무엇보다 당신께 영광이 가려질까 그것이 항상 걱정입니다.
- 사랑하는 종아, 너는 별것을 다 걱정하는구나! 너는 사람 앞에 서지 말고 내 앞에 서라. 그러면 이 모든 걱정은 사라지리라. 모든 것은 내가 허락했다. 나만이 너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네가 그런 것으로 걱정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일 것이다. 남은 생애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나의 종이 되어라. 아직도 너에게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이 남아있다. 오직 내 앞에서 부끄럼 없게 오직 내 앞에서 진실로만 서라. 너의 장래는 나의 장래요 나의 장래는 너의 장래가 될 것이다.
주님!
날마다 무엇을 구하리이까?
- 사랑하는 종아, 사랑을 구하라. '내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내가 인간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너는 나에게 사랑밖에 구할 것이 없다.
- 사랑하는 종아, 새벽이 다 되었다. 오늘을 위해 이제 그만 한숨 자라.
이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 아마 목회자인 것 같은데, 주님 앞에서 아직도 너무도 세상적인 염려로 가득함을 보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만났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만일 의미를 안다면 주저하게 될 내용의 찬송을 대담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예컨대,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 이런 찬송을 수없이 불렀지만, 자신이 그토록 고백한 내용대로는 결코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 보았는지요? 입버릇처럼 “하나님의 뜻대로”를 외치면서 생활 속에서는 주님을 까맣게 잊고 살아갑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나의 생활 속에서 작은 것 하나부터 주님을 생각하면서 실천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믿음은 생활 속에서 실천 될 때에 가치가 있고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여 열매를 맺을 때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쓴 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깊은 고통 속에서 주님을 만난, 그 아름다운 생명의 만남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주님!
내가 이토록 고통 속에서 주님을 만나 죄송합니다. 내가 걸어온 지난 생애가 주님 보시기에 심히 괘씸하였지요? 미우셨지요? 못 마땅한 일 많이 했지요? 그러기에 나에게 이 병을 허락 하신거죠.?
- 사랑하는 종아,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로, 너의 피보다 더 많은 피로 너를 사랑한다. 내게는 괘심이나 미움이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혹 있다면 그것 또한 사랑보다 더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나사로에게 준 질병, 그리고 죽음까지 사랑하는 바울에게 사탄의 가시까지 허락한 것처럼 그렇게 널 사랑한다.
주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나를 정말 일찍 데려가실 겁니까? 그것도 중년에 구순 노모, 혼기 앞둔 자녀, 세상모르는 아내, 그 일보다 더 교회를 위해 계획된 일들, 아직도 불타는 전도의 열정들, 피 토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어찌하라고요.
- 사랑하는 종아, 별것을 다 걱정한다. 너의 소원이 뭐냐? 네가 늘 부르는 찬송을 잊었느냐?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아니냐? 내가 너에게 이래도 저래도 복을 주었도다. 살아도 죽어도 복, 나가도 복, 들어와도 복, 건강해도 복, 병들어도 복, 성공해도 복, 실패해도 복, 이것이 주 안에서의 복이 아니냐! 너의 생명은 의사의 손에도, 병마의 손에도, 운명의 손에도 있지 않고, 더더욱 너의 손에도 있지 않고, 오직 생명은 내 손안에 있다. 네가 왜 그것을 걱정하느냐?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주어진 시간 동안 너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라. 너의 모든 관심은 희망에 두고 네 영역밖에 것은 내게 맡겨라.
주님!
무엇보다 어린 양떼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고통, 세상 사람들의 오해들, 나를 아끼는 모든 이들의 사랑과 낙심, 무엇보다 당신께 영광이 가려질까 그것이 항상 걱정입니다.
- 사랑하는 종아, 너는 별것을 다 걱정하는구나! 너는 사람 앞에 서지 말고 내 앞에 서라. 그러면 이 모든 걱정은 사라지리라. 모든 것은 내가 허락했다. 나만이 너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네가 그런 것으로 걱정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일 것이다. 남은 생애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나의 종이 되어라. 아직도 너에게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이 남아있다. 오직 내 앞에서 부끄럼 없게 오직 내 앞에서 진실로만 서라. 너의 장래는 나의 장래요 나의 장래는 너의 장래가 될 것이다.
주님!
날마다 무엇을 구하리이까?
- 사랑하는 종아, 사랑을 구하라. '내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내가 인간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너는 나에게 사랑밖에 구할 것이 없다.
- 사랑하는 종아, 새벽이 다 되었다. 오늘을 위해 이제 그만 한숨 자라.
이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 아마 목회자인 것 같은데, 주님 앞에서 아직도 너무도 세상적인 염려로 가득함을 보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만났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만일 의미를 안다면 주저하게 될 내용의 찬송을 대담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예컨대,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 이런 찬송을 수없이 불렀지만, 자신이 그토록 고백한 내용대로는 결코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 보았는지요? 입버릇처럼 “하나님의 뜻대로”를 외치면서 생활 속에서는 주님을 까맣게 잊고 살아갑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나의 생활 속에서 작은 것 하나부터 주님을 생각하면서 실천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믿음은 생활 속에서 실천 될 때에 가치가 있고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여 열매를 맺을 때 인정받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