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가야하는 길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3,311회
작성일
2012-05-30 12:11
*** 어렵지만 가야하는 길 ***
주님을 따르는 길의 어려움은 누구나 대강은 짐작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사람들이 피해가는 좁은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당하는 조롱이나 비웃음, 불이익, 고통, 수치를 당하는 것 등. 이런 것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한 주님은 약속은 아주 큽니다. 마태복음 5: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2:19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아무리 이런 큰 약속들이 있어도 실생활에서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 참고 견디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욱이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두 아들을 죽였던 청년을 양자로 받아들인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 길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야합니다.
‘코리텐 붐’여사는 네델란드의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그녀는 유럽계 유태인들을 구출하는데 참가했다는 이유로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 수감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초대 되어 자신의 경험을 강연했을 때, 초대했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굉장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렇지만 나는 날마다 내 자신이 죄수 번호 66730의 죄수였음을 상기합니다.”
이 번호는 그녀가 라벤스쿠르크 집단 수용소에 포로로 있었을 때의 죄수 번호였습니다. 코리 여사는 수용소에서 목욕 순서를 기다리며 나치 친위대 경비병 앞에서 발가벗은 채로 서 있으면서,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아픔을 기꺼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코리 여사는 40대 후반의 독신녀로서 어떻게 독일군의 잔인하고 조롱에 찬 눈길들을 감수한 채 그곳에 서 있을 수 있었는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역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발가벗긴 채였음을 기억나게 해 주셨어요. 그리고 주님을 쳐다본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멸시했음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명예를 포기 하셨음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명예를 잃어버릴 수도, 고난과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의 어려움은 누구나 대강은 짐작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사람들이 피해가는 좁은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당하는 조롱이나 비웃음, 불이익, 고통, 수치를 당하는 것 등. 이런 것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한 주님은 약속은 아주 큽니다. 마태복음 5: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2:19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아무리 이런 큰 약속들이 있어도 실생활에서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 참고 견디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욱이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두 아들을 죽였던 청년을 양자로 받아들인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 길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야합니다.
‘코리텐 붐’여사는 네델란드의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그녀는 유럽계 유태인들을 구출하는데 참가했다는 이유로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 수감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초대 되어 자신의 경험을 강연했을 때, 초대했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굉장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렇지만 나는 날마다 내 자신이 죄수 번호 66730의 죄수였음을 상기합니다.”
이 번호는 그녀가 라벤스쿠르크 집단 수용소에 포로로 있었을 때의 죄수 번호였습니다. 코리 여사는 수용소에서 목욕 순서를 기다리며 나치 친위대 경비병 앞에서 발가벗은 채로 서 있으면서,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아픔을 기꺼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코리 여사는 40대 후반의 독신녀로서 어떻게 독일군의 잔인하고 조롱에 찬 눈길들을 감수한 채 그곳에 서 있을 수 있었는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역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발가벗긴 채였음을 기억나게 해 주셨어요. 그리고 주님을 쳐다본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멸시했음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명예를 포기 하셨음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명예를 잃어버릴 수도, 고난과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