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삶을 찾으세요!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3,914회
작성일
2012-04-12 22:24
*** 자신만의 삶을 찾으세요 ***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습성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품도 있습니다. 흔히 ‘자기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품과 자질을 발굴해 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굳이 어렵게 자기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좀 더 쉬운 보편적인 삶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두 팔 두 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운동, 수영, 타자 등 못하는 일 없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닉 부이치치’도 있고, 두 팔이 없고 한 발도 장애를 가진 몸으로 수영선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받고, 음식을 하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운전을 하고 감동적인 노래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레나 마리아’도 있습니다. 이들은 보편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성품과 자질을 개발한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슈바이쳐 박사도 있습니다.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의 일화는 많습니다.
1960년대 슈바이처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파리에서 덴마크 행 기차를 갈아탔습니다. 슈바이처를 취재하려는 많은 기자들도 그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쳐 박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오신 분, 박사 학위만도 정식 학위가 3개, 명예박사 학위는 20여 개나 되며,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의 칭호를 받은 귀족인 슈바이쳐가 당연히 특등실에 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등실에도, 1등, 2등실에도 없었습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3등 실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난한 시골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진찰해주고 있었습니다. 기자들 물었습니다.
“어떻게 선생님께서 이렇게 남루한 3등 칸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즐길 곳을 찾아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그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사는 것뿐입니다.”
슈바이쳐 박사가 신학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했지만 그의 삶은 주님을 닮은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이 자신이 즐길 곳, 자신을 알아주는 곳, 자신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헌신과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도 이런 사랑의 섬김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습성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품도 있습니다. 흔히 ‘자기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품과 자질을 발굴해 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굳이 어렵게 자기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좀 더 쉬운 보편적인 삶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두 팔 두 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운동, 수영, 타자 등 못하는 일 없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닉 부이치치’도 있고, 두 팔이 없고 한 발도 장애를 가진 몸으로 수영선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받고, 음식을 하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운전을 하고 감동적인 노래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레나 마리아’도 있습니다. 이들은 보편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성품과 자질을 개발한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슈바이쳐 박사도 있습니다.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의 일화는 많습니다.
1960년대 슈바이처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파리에서 덴마크 행 기차를 갈아탔습니다. 슈바이처를 취재하려는 많은 기자들도 그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쳐 박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오신 분, 박사 학위만도 정식 학위가 3개, 명예박사 학위는 20여 개나 되며,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의 칭호를 받은 귀족인 슈바이쳐가 당연히 특등실에 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등실에도, 1등, 2등실에도 없었습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3등 실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난한 시골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진찰해주고 있었습니다. 기자들 물었습니다.
“어떻게 선생님께서 이렇게 남루한 3등 칸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즐길 곳을 찾아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그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사는 것뿐입니다.”
슈바이쳐 박사가 신학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했지만 그의 삶은 주님을 닮은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이 자신이 즐길 곳, 자신을 알아주는 곳, 자신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헌신과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도 이런 사랑의 섬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