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기도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3,694회
작성일
2013-09-25 15:07
*** 능력의 기도 ***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나 신앙을 하나님과의 거래쯤으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어려움이나 고통이나 문제가 있을 때에는 ‘…해주시면 …하겠습니다.’식으로 많은 약속을 남발합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해결된다든지, 응답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만둬 버립니다. 꼭 거래를 하는 듯합니다. 만일 기도가 단순한 거래 형식이라면 단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을 주시면 끝나겠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이유는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인 주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허울 좋은 명목상의 주님이 아닙니다. 매 삶의 순간마다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냉랭한 기도는 화살촉이 달려 있지 않은 화살, 칼날이 붙여져 있지 않은 칼, 날개 없는 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과녁을 꿰뚫을 수도 없고, 조금도 벨 수 없으며, 또한 하늘에 닿을 수도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전제되지 않는 기도야 말로 냉랭한 기도이며, 중언부언하는 기도이며, 껍질만 있는 외식적인 기도가 됩니다.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했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범선을 타고 가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더 갈 수 없다고 가까운 항구에 배가 정박 했습니다. 테일러 선교사는 약속 시간이 있어서 시간 전에 가야 한다고 선장을 독촉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바람이 없어서 배가 갈 수 없으니, 목사인 당신이 바람을 달라고 기도하라.”
고 했습니다. 테일러는 배를 항해할 방향으로 돌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장은 기도부터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배를 돌려놓아야 기도한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선장은 할 수 없이 배의 방향을 돌려놓았습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선창에 있는 작은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선장이 달려와 골방 문을 두드리며,
“목사님, 뭘 하고 계십니까? 이젠 기도를 그만두십시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야단입니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또, 날이 너무 가물어서 어느 교회 가 비를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때 한 장로의 딸인 주일학교 아이가 자기도 함께 기도하러 가겠다고 졸랐습니다. 아이는 허락을 받고는 우산을 챙겨 들었습니다. ‘왜 우산을 가지고 가느냐?’고 어른들이 묻자, “비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올 것이니 집에 올 때에는 우산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어른들은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기도란, 비를 달라고 기도하러 갈 때는 우산을 들고 나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바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배부터 돌려놓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는 결코 기적을 바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이며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하나님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나 신앙을 하나님과의 거래쯤으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어려움이나 고통이나 문제가 있을 때에는 ‘…해주시면 …하겠습니다.’식으로 많은 약속을 남발합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해결된다든지, 응답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만둬 버립니다. 꼭 거래를 하는 듯합니다. 만일 기도가 단순한 거래 형식이라면 단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을 주시면 끝나겠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이유는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인 주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허울 좋은 명목상의 주님이 아닙니다. 매 삶의 순간마다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냉랭한 기도는 화살촉이 달려 있지 않은 화살, 칼날이 붙여져 있지 않은 칼, 날개 없는 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과녁을 꿰뚫을 수도 없고, 조금도 벨 수 없으며, 또한 하늘에 닿을 수도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전제되지 않는 기도야 말로 냉랭한 기도이며, 중언부언하는 기도이며, 껍질만 있는 외식적인 기도가 됩니다.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했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범선을 타고 가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더 갈 수 없다고 가까운 항구에 배가 정박 했습니다. 테일러 선교사는 약속 시간이 있어서 시간 전에 가야 한다고 선장을 독촉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바람이 없어서 배가 갈 수 없으니, 목사인 당신이 바람을 달라고 기도하라.”
고 했습니다. 테일러는 배를 항해할 방향으로 돌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장은 기도부터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배를 돌려놓아야 기도한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선장은 할 수 없이 배의 방향을 돌려놓았습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선창에 있는 작은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선장이 달려와 골방 문을 두드리며,
“목사님, 뭘 하고 계십니까? 이젠 기도를 그만두십시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야단입니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또, 날이 너무 가물어서 어느 교회 가 비를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때 한 장로의 딸인 주일학교 아이가 자기도 함께 기도하러 가겠다고 졸랐습니다. 아이는 허락을 받고는 우산을 챙겨 들었습니다. ‘왜 우산을 가지고 가느냐?’고 어른들이 묻자, “비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올 것이니 집에 올 때에는 우산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어른들은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기도란, 비를 달라고 기도하러 갈 때는 우산을 들고 나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바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배부터 돌려놓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는 결코 기적을 바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이며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하나님과의 호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