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3,108회
작성일
2014-03-10 12:19
*** 신실한 사람 ***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정직하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할 때는 정직하고 신실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에 “Yours sincerely\" 라는 마지막 경구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충심으로’ 혹은 ‘당신의 신실한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편지의 경구로 사용하게 된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옛 로마에는 대리석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흠이 생긴 대리석도 있었습니다. 대리석 상인들이 이 흠 있는 대리석을 손님들의 눈을 속여 팔기 위해 대리석에 밀랍을 녹여 칠하여 시장에 내놓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흠이 없는 대리석을 부를 때는 'sine cera(밀랍을 바르지 않은 것)' 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서방으로 전해지면서 서구 사람들이 편지 끝에 자주 쓰는 ‘충심으로’ ‘당신의 신실한 ❍❍’ 라고 하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거짓이 너무나 많아서 이제는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뉴스거리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사가 길을 갈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소년들이 강아지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너희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라고 묻자 소년 중의 한 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저 강아지를 갖기로 했거든요.\"
아이들이 하필이면 거짓말 잘 하는 내기를 하는 것이 염려스러워진 목사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들 나이였을 때는 말이다. … 절대로 거짓말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단다.\"
그러자 소년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소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이 강아지를 가져야 할 것 같군.\"
우리 사회에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그저 온갖 우스갯소리만 난무합니다. TV 에서도 온통 토크쇼가 판을 칩니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의 댓글에는 ‘진짜인지 의심스럽다’, 혹은 ‘믿을 수 없다.’ 등의 반응이 많습니다. 사건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함으로 빛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정직하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할 때는 정직하고 신실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에 “Yours sincerely\" 라는 마지막 경구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충심으로’ 혹은 ‘당신의 신실한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편지의 경구로 사용하게 된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옛 로마에는 대리석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흠이 생긴 대리석도 있었습니다. 대리석 상인들이 이 흠 있는 대리석을 손님들의 눈을 속여 팔기 위해 대리석에 밀랍을 녹여 칠하여 시장에 내놓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흠이 없는 대리석을 부를 때는 'sine cera(밀랍을 바르지 않은 것)' 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서방으로 전해지면서 서구 사람들이 편지 끝에 자주 쓰는 ‘충심으로’ ‘당신의 신실한 ❍❍’ 라고 하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거짓이 너무나 많아서 이제는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뉴스거리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사가 길을 갈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소년들이 강아지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너희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라고 묻자 소년 중의 한 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저 강아지를 갖기로 했거든요.\"
아이들이 하필이면 거짓말 잘 하는 내기를 하는 것이 염려스러워진 목사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들 나이였을 때는 말이다. … 절대로 거짓말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단다.\"
그러자 소년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소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이 강아지를 가져야 할 것 같군.\"
우리 사회에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그저 온갖 우스갯소리만 난무합니다. TV 에서도 온통 토크쇼가 판을 칩니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의 댓글에는 ‘진짜인지 의심스럽다’, 혹은 ‘믿을 수 없다.’ 등의 반응이 많습니다. 사건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함으로 빛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