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있으십시오.
*** 사랑 안에 있으십시오. ***
요즘 젊은이들은 이벤트를 아주 잘 합니다. 사귀는 이성 친구를 위하여 날짜를 헤아려가면서 이벤트성 상황연출을 합니다. 100일 기념, 생일축하, 청혼 등 갖가지 제목을 달아서 이벤트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특별한 연출을 하지 않으면 마치 사랑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섭섭해 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디 목사님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다섯 살 꼬마 아들이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무디는 아들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얘야, 무얼 원하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꼬마 아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냥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닥에 앉아서 조용히 혼자서 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그 꼬마 아들이 정말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을 해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모든 것, 생명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위대하다고 꼽는 것도 자녀를 위한 전적인 희생적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한 것도 무조건적인 희생적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라고 하시며, 로마서 5: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자신을 기꺼이 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보답으로 무엇인가 위대하고 큰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우리가 주님 곁에 있기를 바라시며, 주님을 따르며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3절에서는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하셨고, 요한계시록 3:20절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고 하십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항상 주님 곁에서 주님을 기뻐하며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을 따르기를 힘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