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위치
*** 지금 나의 위치 ***
현대 교회를 ‘정신 나간 신데렐라’에 비유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쓴 책의 표지에는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한 소녀가 유리 구두 한 짝을 손에 쥐고 앉아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신학자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잠시 후면, 왕자님과 결혼하여 왕비가 될 것인데 이 소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소녀는 미래의 행복과 영광을 보장하는 유리 구두 한 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멍하니 구두 한 짝만 내려다보고 있는 처량한 모습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이미 이 지상에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으며, 그 혜택을 여러 면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엄청난 행복과 영광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런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세속적인 삶에 도취하여, 세상과 함께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신데렐라와 같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교회는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풍요와 육신적인 쾌락과 평안을 최고의 복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 살 수 있고, 병을 고칠 수 있고, 출세할 수 있고,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손짓합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십자가와 고난’, ‘희생’, ‘헌신’이라는 글자들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이라는 조건은 달았지만, 정작 예수님이 하셨던 일과 걸어가셨던 고난의 길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부패가 심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썩었다고 탄식합니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이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질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아담의 범죄로부터 변질되었습니다. 세상이 썩기 시작한 것은 사람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난 후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감사하거나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로마서1:21절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세상의 변질을 한탄한다고 세상이 돌아서겠습니까? 탄식이 아니라 나서서 변질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썩음을 방지하는 소금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썩었다”고 말할 때, “썩은 것”은 이 세상의 제도나 구조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구조나 제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부패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 문화와 문명, 모든 구조와 제도에 쓰며들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러한 부패가 오늘의 천재지변과 온갖 재앙들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밝히도록 부름 받은 빛이며, 썩음을 막고 삶의 맛을 내도록 부름 받은 소금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합니다. 이제 이 본연의 의무를 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