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처럼?
*** 너도 나처럼 ***
“조선의 선비들은 거미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거미는 자기 뱃속에 알을 낳습니다. 깨어난 새끼들은 어미를 파먹고 자라다가 세상으로 나옵니다. 효(孝)가 으뜸 덕목이었던 선비들에게 어미를 잡아먹는 거미의 습성은 여간 끔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보는 족족 거미줄을 거두어냈다고 합니다.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가 끝나자마자 지아비를 씹어 먹습니다(중략). 이런 모습을 보고 욕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거미도, 사마귀도, 돼지도 타고난 본성에 따라 살아갈 뿐이니까, 자연을 도덕의 잣대로 바라본 순간, 인간은 애꿎은 생명들만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이 글은 안광복 씨가 지은 ‘철학자의 설득법’이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사람이 거미나 사마귀의 생태를 자신들의 잣대로 보는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거미나 사마귀는 인간의 잣대가 아닌 그들 자신들의 생태로 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삶에도 그와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자신의 잣대로 보면 부당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으로 보면 조금 수긍이 가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남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리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래된 착각입니다. 더 큰 착각은 남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착각을 가리켜 아집(我執)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눈을 가져가는 과정입니다. 눈이 밝을 때 온 몸이 밝아지고, 눈이 나쁠 때 온 몸이 어두워집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만물을 보며, 주님의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주님의 심정으로 세상을 살면 진정한 자유와 이해심과 용납하는 삶을 이루게 됩니다.
인터넷의 새벽편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천천히 좀 가, 숨 좀 쉬면서 가자”
뒤에서 숨차게 따라오는 친구를 보며 씨 -익 웃고는 다시 길을 걷는다. 친구 속도에 맞추면 아마 오늘 안에 도착은커녕 내일도 힘들 것이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빨리 걷는 것이 좋을까 천천히 걷는 게 좋을까? 빨리 걸을 때면 엔돌핀이 솟아난다. 스트레스도 사라지는 듯하고… 그런데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은 활력도 사라지고 자칫 무기력해질 수 있으니 너무 빨리는 걷지 말아야지 싶다. …]
우리는 너무 빠르고 바쁘게 삽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시간을 할애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나 자신의 목표와 욕망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모두 나처럼 만들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 자신처럼 만들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성을 모두 이해하시며 그들의 있는 그대로를 받으셨습니다. 그들의 잘못조차 탓하기 전에 용서하고 인내하며 기다리셨습니다. 이렇게 살면 좀 더디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살면 안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