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믿음
*** 진정한 믿음 ***
진정한 믿음은 사람의 생각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면서도 생활에서는 전혀 행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주변에서 신앙이 정말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서 만난다든지, 가끔 어떤 모임에서 만나면 정말 신앙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일상생활에서 교제하면, ‘그 사람의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좋아 보이는데, 깊이 교제하거나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대답은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14절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이 마음속에 갇혀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반신반의하며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조금 더 확신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십시오. 증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요구합니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와도 빠지지 않게 하겠다는 어떤 설명이나 약속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오라.”라는 명령뿐이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빈 깡통이나 무언가가 가득 찬 깡통은 소리가 안 납니다. 어중간하게 들어 있는 깡통이 소리가 납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변명이나 불신의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처럼, 어중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변명도 많고 의혹도 많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믿음은 어떤 환경이나 증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은 증거가 사라지고, 환경이 변하면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미국 남침례교 신학 학장을 역임한 ‘스카보로’라는 유명한 박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박사님의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고 믿으세요? 과학적으로 얼른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그 이야기를 말이에요.” 이때, 스카보로 박사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는 사실을 믿는단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나가 물고기를 삼키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나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 일이 왜 불가능하겠니.”
스키보로 박사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시면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붙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이치, 과학적인 지식 모두를 동원해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겠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며, 이런 믿음의 사람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꼐서 원하시는 믿음이 바로 이런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