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
*** 예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 ***
*** 요한복음 14:2-6 ***
공원이나 공공시설들에 가끔 붙어 있는 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머문 자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향취가 나게 됩니다.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을 아시지요?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이 만년에 쓴 단편소설입니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傳說)을 듣습니다. 그 전설은 ‘마을 뒤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품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삽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전투를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지만,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갑자기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라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어니스트가 항상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라고 생각하며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았던 삶이 곧 큰 바위 얼굴의 삶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기를 힘쓰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삶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께서 가신 생애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생애의 자취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좀 더 쉽게 23절에서 풀어주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주님의 생애의 자취를 따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 참 멋있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 ‘멋스러움’은 여러 가지 상황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외적인 모습의 멋일 수도 있고, 내면의 풍기는 인품의 멋일 수도 있고, 말이나 행동이나 삶의 모습의 멋스러움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영적인 멋스러움도 있습니다. 영적인 삶의 멋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하나를 이루는 인품과 그로 인한 삶이 어우러져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이렇게 진정으로 멋스러운 삶이었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멋을 닮은 아름다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