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큐티 / 독서 산책

삶의 개념을 정립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02회 작성일 2024-06-16 16:17

*** 신앙의 개념을 정립하십시오. ***

*** 고린도후서 6:1-10 ***

 

여러분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습니까?

보편적인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을 느낍니까?

혹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불편하다거나, 손해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없습니까?

초대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대적이 유대교였으며, 세상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득한 우상숭배의 온상이며, 정치적으로는 황제숭배의 위협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이와 같은 위협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때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념을 올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우리가 종종 ‘저 사람 참 개념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삶의 개념이란,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정신적인 닻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느 대학에서 적응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토끼 두 마리에게 각각의 앞발에 깁스를 했습니다. 한 마리는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습니다.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깁스만을 뜯어내기 위해 이빨로 갉다가 털다가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계속되다 보니 점점 약해졌고 행동도 둔해졌습니다. 다른 토기도 역시 처음에는 깁스를 물어뜯고 털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도저히 뜯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포기하고 먹이를 먹기도 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당연히 앞다리가 불편한 것 외에는 건강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이와 유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의 삶이 기쁨도 감사도 생의 즐거움도 없이 어둡고 힘겹게 삽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삽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이런 삶의 차이를 느낄 때가 있지요? 여러분은 왜 이런 삶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람에게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내 삶의 개념을 분명하게 정립해야 합니다.

 

개념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떠한 사물 또는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라고 합니다. 즉 ‘기초적인 이해와 생각’ ‘기본적인 매너나 상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념이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지식과 이해’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라는 ‘제자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신앙의 삶에 관하여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1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6:4-10절에 상세하게 열거합니다. 이 내용은 우리의 신앙을 유혹하는 세상의 환경과 신앙을 위협하는 온갖 시험과 어려움과 고난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말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삶에 관하여는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했다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은 사도 베드로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개념을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예수께서 ‘너희들이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막 14:29)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예수께서 잡히시고 대제사장에게 심문받으실 때, 베드로는 바깥 뜰에 있다가 대제사장의 여종이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하자, 세 번이나 “모른다.”라고 부인했고,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도망쳐버렸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교회에서나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모두 훌륭한 신앙의 모습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예수 믿는 티도 내지 않거나, 혹은 누군가 예수님을 비난하고 교회를 욕할 때는 모른 척 침묵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다른 사람에 관하여 뒷말하거나, 별다른 생각 없이 올바르지 못하게 행동합니다. 이것이 ‘신앙적 무개념’입니다. 이런 신앙적 무개념의 사람에 관하여 예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38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말씀은 ‘신앙적 무개념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의미를 완곡하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고후 6:4-10절까지를 꼭 읽어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삶에서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사도 바울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이나 삶의 개념이 달라졌겠습니까? 시대는 달라졌고, 삶의 환경이나 상황도 많이 달라졌으며, 성경 시대의 문화와 지금 우리의 문화도 아주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념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과부와 재판장 비유’로 기도의 필요성을 가르치시면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이 발전하면서 삶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고, 풍습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더는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게 될 것’이라는 염려이십니다. 이러할 때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13절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지금,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생명의 길을 벗어나게 하려는 악한 영의 세력들이 온갖 삶의 덫을 놓고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미혹합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잠들지 않도록 발버둥 쳐야 합니다. 영적으로 잠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에서 멀어지고, 기도하지 않으며, 세상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 마라나–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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