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과 대가
*** 원하는 것과 대가(代價) ***
*** 요한복음 12:24-26 ***
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청소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연금이나 퇴직금도 있을 텐데 저런 일을…’ 이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분의 친구가 콘서트 티켓이 생겨서 그분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독한 친구를 위해 휴일 없이 일한 지 3년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말기 암으로 올해를 넘기기 어려운 상황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병원비를 위해 휴일 없이 청소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내 힘으로 친구 하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5: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은 예수께서 인정하시는 희생적인 삶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고 썩어져야 새로운 생명과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의 희생을 통하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과 교회와 나라가 살게 되고,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처럼, 요한복음 12:24-26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는 뿌려진 씨앗이 죽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며 귀하게 여김을 받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는 예수님을 섬기며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영광의 삶을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죽도록 고생하고 생명의 위기까지도 감수하면서 마련한 것을, 다른 사람이 그냥 가지겠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24-25절입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겠습니까? 세상의 돈과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로 채워진 그릇에는 다른 것을 담을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외면합니다. 만일 다른 것을 담으려 한다면 먼저 있는 것을 비워내야 하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진리입니다.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내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풍성한 삶으로 채움을 받고 싶다면, 세상의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하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필요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도 일어나겠지요. “세상의 것 모두 손 놓으면, 하나님 믿는 신앙으로만 살 수가 있어?” 세상의 것을 비우라는 말은, 세상의 재물이나 세상의 것들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더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목적지가 바뀐 후에는 옛사람과 옛사람의 삶의 행태를 버리고, 새사람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직은 세상의 삶과 영의 새로운 삶이 뒤섞여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삽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듯이 우리도 새사람으로서의 결실을 향하여 날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