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도미니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525회
작성일
2001-07-25 22:15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편안 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길만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하나님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나를 위하여 인생이 되셨고, 애매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애매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길은 편안하고 안전하고 즐거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전에 해산물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자매님 한 분과 신앙의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전도사님! 이 공장의 분위기나 환경이 저에게는 무리입니다. 아무래도 이 공장을 그만둬야 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는 자매에게 되물었습니다.
“자매님이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아직은 그런 확신이 없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어디에 등불을 켜십니까?”
“어두운 데요.”
“언제 불을 켭니까?”
“어두울 때지요.”
“자매님이 처하고 있는 그 공장과 그 환경이 어둡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그 자리에 등불로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 자매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고
그곳에서 ‘신우회’를 조직하고 주말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젊은 여공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을 멀리 떠나와서 울적했던 마음들이 서로 위로받고 도움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자리는 내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존재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미 밝은 곳이라면 빛은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곳을 외면합니다. 고통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 곳을 피합니다. 주님이 그곳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아시지요? ‘쿼바디스 도미니’라는 말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입니다. 내용은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핍박과 고난을 피해 가는 사람을 대신하여 주님이 그곳으로 가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일어난 대 핍박을 피하여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로마를 등지고 길을 재촉합니다. 그 때 베드로는 로마를 향하여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니?”
“네가 버리고 온 곳으로 내가 십자가를 지러 간다.”
라고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를 당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피하고 있는 자리에 주님이 대신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내게 주신 자리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우리는 ‘나’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이 머물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편안 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길만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하나님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나를 위하여 인생이 되셨고, 애매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애매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길은 편안하고 안전하고 즐거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전에 해산물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자매님 한 분과 신앙의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전도사님! 이 공장의 분위기나 환경이 저에게는 무리입니다. 아무래도 이 공장을 그만둬야 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는 자매에게 되물었습니다.
“자매님이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아직은 그런 확신이 없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어디에 등불을 켜십니까?”
“어두운 데요.”
“언제 불을 켭니까?”
“어두울 때지요.”
“자매님이 처하고 있는 그 공장과 그 환경이 어둡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그 자리에 등불로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 자매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고
그곳에서 ‘신우회’를 조직하고 주말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젊은 여공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을 멀리 떠나와서 울적했던 마음들이 서로 위로받고 도움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자리는 내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존재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미 밝은 곳이라면 빛은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곳을 외면합니다. 고통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 곳을 피합니다. 주님이 그곳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아시지요? ‘쿼바디스 도미니’라는 말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입니다. 내용은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핍박과 고난을 피해 가는 사람을 대신하여 주님이 그곳으로 가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일어난 대 핍박을 피하여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로마를 등지고 길을 재촉합니다. 그 때 베드로는 로마를 향하여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니?”
“네가 버리고 온 곳으로 내가 십자가를 지러 간다.”
라고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를 당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피하고 있는 자리에 주님이 대신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내게 주신 자리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우리는 ‘나’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이 머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