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과 단순함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998회
작성일
2001-07-14 12:54
이런 말 아시지요?
“지나침과 모자람은 둘 다 죄악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항상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의 삶과 육신의 삶, 믿음과 행함, 사랑과 공의 등.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되면,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신앙이 바르게 서지 않으면 각종 시련과 유혹에 약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도우심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사30:20-21)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한 늙은 스코틀랜드 사람이 작은 배의 노를 저으며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손님 중의 한 사람이 그 노인이 젓고 있는 노에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쪽 노에는 ‘믿음’ 그리고 다른 노에는 ‘옳은 행위’ 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 손님이 글씨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 노인은 “자 보시오!” 하면서 ‘옳은 행위’ 라고 써 있는 노만 저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배는 원을 그리면서 뱅글뱅글 돌기만 했습니다. 바꿔서 ‘신앙’ 이라고 쓰인 노만 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노를 둘 다 함께 젓자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입니다. 믿음 없는 메마른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행동 없는 믿음 또한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옳은 행위의 두 노를 함께 젓는다면 안전과 발전과 은총을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라고 그 의미를 설명 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영의 삶과 육신의 삶, 믿음과 행함,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까?
영의 삶, 믿음, 사랑 쪽이 강하게 되면 현실 도피적이며 우유부단한 삶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육신의 삶, 행위, 공의를 강조하게 되면 세상적이며 딱딱하고 형식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단순하게 믿고 따르면 됩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결국 자신의 뜻과 계산이 앞서게 되어 신앙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는 인간의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몇 년 전 어느 젊은 카피라이터(광고문안작정자)가 새로 나온 비누를 위한 광고문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광고문은 이러합니다.
“이 제품에 포함된 알칼리 성분과 지방질은 최고 품질의 비누로서 쓰이도록 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 위에 뜰 수 있게 특수한 인력(引力)장치가 되어 있어서 목욕하다가 욕탕 바닥에 라 앉은 비누를 더듬어 찾는 번거로움과 괴로움을 제거해 줍니다.”
그러나 좀 더 경험이 많은 광고인은 단 두 마디 말로 전했습니다.
“이 비누는 뜹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으니까요.
“지나침과 모자람은 둘 다 죄악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항상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의 삶과 육신의 삶, 믿음과 행함, 사랑과 공의 등.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되면,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신앙이 바르게 서지 않으면 각종 시련과 유혹에 약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도우심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사30:20-21)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한 늙은 스코틀랜드 사람이 작은 배의 노를 저으며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손님 중의 한 사람이 그 노인이 젓고 있는 노에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쪽 노에는 ‘믿음’ 그리고 다른 노에는 ‘옳은 행위’ 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 손님이 글씨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 노인은 “자 보시오!” 하면서 ‘옳은 행위’ 라고 써 있는 노만 저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배는 원을 그리면서 뱅글뱅글 돌기만 했습니다. 바꿔서 ‘신앙’ 이라고 쓰인 노만 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노를 둘 다 함께 젓자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입니다. 믿음 없는 메마른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행동 없는 믿음 또한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옳은 행위의 두 노를 함께 젓는다면 안전과 발전과 은총을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라고 그 의미를 설명 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영의 삶과 육신의 삶, 믿음과 행함,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까?
영의 삶, 믿음, 사랑 쪽이 강하게 되면 현실 도피적이며 우유부단한 삶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육신의 삶, 행위, 공의를 강조하게 되면 세상적이며 딱딱하고 형식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단순하게 믿고 따르면 됩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결국 자신의 뜻과 계산이 앞서게 되어 신앙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는 인간의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몇 년 전 어느 젊은 카피라이터(광고문안작정자)가 새로 나온 비누를 위한 광고문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광고문은 이러합니다.
“이 제품에 포함된 알칼리 성분과 지방질은 최고 품질의 비누로서 쓰이도록 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 위에 뜰 수 있게 특수한 인력(引力)장치가 되어 있어서 목욕하다가 욕탕 바닥에 라 앉은 비누를 더듬어 찾는 번거로움과 괴로움을 제거해 줍니다.”
그러나 좀 더 경험이 많은 광고인은 단 두 마디 말로 전했습니다.
“이 비누는 뜹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