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969회
작성일
2002-04-06 18:22
♡♥♡♥♡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
♧♣♧♣♧ 디모데후서 4:7-8 ♧♣♧♣♧
「토마스 카알라일」은 말하기를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 해도 나는 오직 한 가지, 희망만은 가지기를 원한다.’ 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항상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의 활기를 잃거나 삶에 회의를 가질 때, 절망스러울 때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세계2차 대전 때 영국과 미국의 포로 2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8,000명의 포로가 사망했는데, 대부분은 영양실조도, 질병도, 과로도 아닌 절망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전후(戰後) 조사에서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제2차 대전 중에 6백만 명의 유태인이 학살되었습니다. 그 유태인들이 독일의 지하 감옥에서 무서운 고난을 당할 때에 그들이 수감되었던 한 지하 감옥의 벽에서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록 태양빛이 우리에게 비춰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한 사랑이 있음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우리는 이 글에서 어두움의 절망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그 건너편의 승리를 바라보는 절실하고도 확신에 찬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성공’과 ‘승리’는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고통과 인내와 훈련과 연단을 거친 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성공과 승리를 원한다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을 정의하기를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 즉 ‘희망하는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꿈과 희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고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고난과 고통은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부활도 함께 누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도의 소망에 대하여 ‘헤버걸’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렇다! 그 땅은 비록 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한 발자국만 떼면, 한 순간만 지나면 고통은 지나가고 그 땅은 그대를 위하여 있게 되리니 그 때 슬픔은 기쁨이, 밤은 낮이 됨을 그대는 보게 되리라.”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없어질 것이며, 육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가지고 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것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영원한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없어질 것으로 영원한 것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과 물질과 지식과 능력에 수고와 헌신과 사랑을 더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이지도 않는 이런 일을 소망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미 승리가 약속된 경주를 함으로 우리는 이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 디모데후서 4:7-8 ♧♣♧♣♧
「토마스 카알라일」은 말하기를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 해도 나는 오직 한 가지, 희망만은 가지기를 원한다.’ 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항상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의 활기를 잃거나 삶에 회의를 가질 때, 절망스러울 때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세계2차 대전 때 영국과 미국의 포로 2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8,000명의 포로가 사망했는데, 대부분은 영양실조도, 질병도, 과로도 아닌 절망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전후(戰後) 조사에서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제2차 대전 중에 6백만 명의 유태인이 학살되었습니다. 그 유태인들이 독일의 지하 감옥에서 무서운 고난을 당할 때에 그들이 수감되었던 한 지하 감옥의 벽에서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록 태양빛이 우리에게 비춰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한 사랑이 있음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우리는 이 글에서 어두움의 절망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그 건너편의 승리를 바라보는 절실하고도 확신에 찬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성공’과 ‘승리’는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고통과 인내와 훈련과 연단을 거친 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성공과 승리를 원한다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을 정의하기를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 즉 ‘희망하는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꿈과 희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고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고난과 고통은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부활도 함께 누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도의 소망에 대하여 ‘헤버걸’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렇다! 그 땅은 비록 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한 발자국만 떼면, 한 순간만 지나면 고통은 지나가고 그 땅은 그대를 위하여 있게 되리니 그 때 슬픔은 기쁨이, 밤은 낮이 됨을 그대는 보게 되리라.”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없어질 것이며, 육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가지고 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것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영원한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없어질 것으로 영원한 것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과 물질과 지식과 능력에 수고와 헌신과 사랑을 더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이지도 않는 이런 일을 소망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미 승리가 약속된 경주를 함으로 우리는 이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