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삶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985회
작성일
2002-05-05 21:12
♡♥♡♥♡ 지혜로운 삶 ♡♥♡♥♡
♧♣♧♣♧ 고린도전서3:10-15 ♧♣♧♣♧
사람들은 ‘기회’라는 틈바구니에서 살아갑니다. 기회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기회를 잡기 위하여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 기회들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기회는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어느 재벌의 집무실에 한 전도자가 까다로운 절차를 극복하고 가까스로 그를 방문했습니다. 전도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매우 정중하고도 진실한 음성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꼭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난 지금 몹시 바쁘오. 한가한 이야기를 할 틈이 없소이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일보다 더 바쁜 일은 없습니다.”
“농담하지 마시오. 미안하지만 오늘은 돌아가 주시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던 어느 날, 재벌이 그의 집무실 책상에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모든 시간이 끝났소. 나와 함께 갑시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죽음의 사자요. 당신은 하나님의 법정으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거부할 수 없으며, 결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며,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 한시적으로 살아갑니다. 즉 본래의 삶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의 육신의 삶은 그 본래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 앞에서는 아무도 바쁘다고 말하거나 시간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생명의 기회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생활과 이익 때문에 본래의 삶인 영원한 삶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을 준비해야 합니다.
2-30년 전에는 성도들에게 금기사항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성경에 직접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복음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관에 가는 것은 안 좋은 일이었으며, 경건한 여성은 화장을 해서는 안 되었고, 노름이나 화투. 술과 담배도 엄히 금했습니다. 그 외에도 금하는 것들과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지킬수록 훌륭한 신앙생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성도가 해서는 안 되는 일들과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반쪽일 뿐입니다. 또 다른 반쪽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들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금하고, 피하고, 숨느라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재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는 율법주의의 삶이요 비극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매일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재물과 건강과 환경과 여건을 다하여 내가 누릴 영원한 삶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 고린도전서3:10-15 ♧♣♧♣♧
사람들은 ‘기회’라는 틈바구니에서 살아갑니다. 기회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기회를 잡기 위하여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 기회들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기회는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어느 재벌의 집무실에 한 전도자가 까다로운 절차를 극복하고 가까스로 그를 방문했습니다. 전도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매우 정중하고도 진실한 음성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꼭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난 지금 몹시 바쁘오. 한가한 이야기를 할 틈이 없소이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일보다 더 바쁜 일은 없습니다.”
“농담하지 마시오. 미안하지만 오늘은 돌아가 주시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던 어느 날, 재벌이 그의 집무실 책상에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모든 시간이 끝났소. 나와 함께 갑시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죽음의 사자요. 당신은 하나님의 법정으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거부할 수 없으며, 결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며,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 한시적으로 살아갑니다. 즉 본래의 삶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의 육신의 삶은 그 본래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 앞에서는 아무도 바쁘다고 말하거나 시간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생명의 기회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생활과 이익 때문에 본래의 삶인 영원한 삶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을 준비해야 합니다.
2-30년 전에는 성도들에게 금기사항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성경에 직접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복음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관에 가는 것은 안 좋은 일이었으며, 경건한 여성은 화장을 해서는 안 되었고, 노름이나 화투. 술과 담배도 엄히 금했습니다. 그 외에도 금하는 것들과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지킬수록 훌륭한 신앙생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성도가 해서는 안 되는 일들과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반쪽일 뿐입니다. 또 다른 반쪽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들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금하고, 피하고, 숨느라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재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는 율법주의의 삶이요 비극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매일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재물과 건강과 환경과 여건을 다하여 내가 누릴 영원한 삶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