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마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079회
작성일
2002-10-12 22:06
♡♥♡♥♡ 넓은 마음 ♡♥♡♥♡
♧♣♧♣♧ 빌립보서 4:5 ♧♣♧♣♧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은 좁은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물질이나 사상이나 쾌락 등을 허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을 요구하는 이 길은 아무나 갈 수 없는 분명히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독선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마음까지도 ‘밴댕이 속처럼 좁아터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주님처럼 원수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넓은 것입니다.
한 그리스도인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다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칠고 매정하게 대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매사에 자신이 옳고 중심이 되어야 하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이 버릇을 고쳐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수선공의 상점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구두 한 켤레를 맞추려고 하는데 치수 좀 재주게.”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 목사님께서 신고 계신 구두를 벗어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그가 치수를 재고 나자 목사님은,
“내 아들도 구두 한 켤레가 필요한데…”
라고 하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꺼이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그렇다면 아드님 치수도 재야되겠는데요.”
“아니. 그럴 필요 없네. 그 애는 14살 이지만 내 것과 똑같은 모양. 똑같은 치수로 하면 된다네.”
그러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드님의 발은 목사님보다 훨씬 작은데 치수를 똑같이 하면 어떻게 신고 다니겠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내 것과 내 아들 것을 똑같이 만들게나.”
이에 수선공은 늙은 목사가 정신이 나갔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그것은 도대체 불가능합니다. 구두가 발에 맞아야 하니까요.”
“이보게, 구두가 제대로 맞으려면 구두 한 켤레마다 고유한 형으로 만들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네는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만드실 때 자네 자신과 똑같은 모양과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신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생각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겠나.”
그제야 그는 얼굴이 붉어지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목사님. 다른 사람의 생각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겠군요.”
이 수선공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좁은 생각에 매어있습니다. 옛날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했던 ‘천동설’을 기억하시지요? 요즈음에는 ‘영적 천동설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천동설 콤플렉스’란, 신앙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잣대가 되어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을 책망한 것처럼 말입니다. 가룟 유다는 엄청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은데 쓸데없이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처럼 모두를 관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빌립보서 4:5 ♧♣♧♣♧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은 좁은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물질이나 사상이나 쾌락 등을 허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을 요구하는 이 길은 아무나 갈 수 없는 분명히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독선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마음까지도 ‘밴댕이 속처럼 좁아터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주님처럼 원수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넓은 것입니다.
한 그리스도인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다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칠고 매정하게 대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매사에 자신이 옳고 중심이 되어야 하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이 버릇을 고쳐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수선공의 상점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구두 한 켤레를 맞추려고 하는데 치수 좀 재주게.”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 목사님께서 신고 계신 구두를 벗어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그가 치수를 재고 나자 목사님은,
“내 아들도 구두 한 켤레가 필요한데…”
라고 하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꺼이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그렇다면 아드님 치수도 재야되겠는데요.”
“아니. 그럴 필요 없네. 그 애는 14살 이지만 내 것과 똑같은 모양. 똑같은 치수로 하면 된다네.”
그러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드님의 발은 목사님보다 훨씬 작은데 치수를 똑같이 하면 어떻게 신고 다니겠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내 것과 내 아들 것을 똑같이 만들게나.”
이에 수선공은 늙은 목사가 정신이 나갔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그것은 도대체 불가능합니다. 구두가 발에 맞아야 하니까요.”
“이보게, 구두가 제대로 맞으려면 구두 한 켤레마다 고유한 형으로 만들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네는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만드실 때 자네 자신과 똑같은 모양과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신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생각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겠나.”
그제야 그는 얼굴이 붉어지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목사님. 다른 사람의 생각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겠군요.”
이 수선공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좁은 생각에 매어있습니다. 옛날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했던 ‘천동설’을 기억하시지요? 요즈음에는 ‘영적 천동설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천동설 콤플렉스’란, 신앙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잣대가 되어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을 책망한 것처럼 말입니다. 가룟 유다는 엄청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은데 쓸데없이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처럼 모두를 관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