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행복의 비결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059회
작성일
2003-02-22 14:32
♡♥♡♥♡ 돈, 행복의 비결 ♡♥♡♥♡
♧♣♧♣♧ 롬13:8, 갈5:14 ♧♣♧♣♧
현대인들의 가장 큰 우상은 ‘돈’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위하여 끊임없이 돈을 갈구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의 척도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고대사회는 ‘현인(賢人, Wise Man)'이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중세사회는 '성자(聖者, Saint)'가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재력가(財力家, Rich Man)'가 이상적인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 대부분이 황금만능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돈은 인생의 지고한 행복을 보장하며,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집니다. 오죽하면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고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돈을 싫어해야 하고, 벌지도 않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돈이 죄가 아닙니다. 돈에 매여서 종노릇하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셨지 돈이 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선하고 정직하고 땀 흘리는 수고를 통하여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것으로 선한 사업에 열심해야 합니다. 인간사회에는 돈이 통용되는 재화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도 돈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구제할 수도 있고 선교 사업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으며,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세상과 함께 없어질 것이지만,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 돈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선하게도 되며 악하게도 되는 것이며, 우상도 될 수 있습니다.
유대 격언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 자신의 건강이나 능력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무엇이든지 남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일 테니까요. 이렇게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자동차에 연료를 넣기 위하여 주유소에 들어갔습니다. 주유소 직원이 연료를 넣으면서 자동차 앞 유리를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유리를 다 닦고 나자 운전석에 있던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러우니 한 번 더 닦아줘요.”
라고 했습니다. 직원은 알았다고 하면서 다시 자세히 살피면서 닦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화를 내며,
“아직도 더럽군! 아니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다시 닦아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직원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유리를 살피며 닦았지만 더러운 곳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크게 화를 내며,
“유리창이 여전히 더럽군! 주인에게 말해서 저 사람을 일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라고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옆 좌석의 아내가 남편을 잡으면서 안경을 벗겨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휴지로 깨끗하게 렌즈를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다시 안경을 씌워주었습니다. 남편은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유리창은 깨끗하게 잘 닦여 있었습니다.
이처럼, 남을 행복하게 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더러운 안경으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땀 흘리는 수고로 돈을 많이 버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많이 쓰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꾸어 가시는 것이므로 반드시 사랑과 행복과 물질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 롬13:8, 갈5:14 ♧♣♧♣♧
현대인들의 가장 큰 우상은 ‘돈’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위하여 끊임없이 돈을 갈구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의 척도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고대사회는 ‘현인(賢人, Wise Man)'이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중세사회는 '성자(聖者, Saint)'가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재력가(財力家, Rich Man)'가 이상적인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 대부분이 황금만능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돈은 인생의 지고한 행복을 보장하며,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집니다. 오죽하면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고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돈을 싫어해야 하고, 벌지도 않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돈이 죄가 아닙니다. 돈에 매여서 종노릇하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셨지 돈이 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선하고 정직하고 땀 흘리는 수고를 통하여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것으로 선한 사업에 열심해야 합니다. 인간사회에는 돈이 통용되는 재화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도 돈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구제할 수도 있고 선교 사업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으며,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세상과 함께 없어질 것이지만,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 돈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선하게도 되며 악하게도 되는 것이며, 우상도 될 수 있습니다.
유대 격언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 자신의 건강이나 능력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무엇이든지 남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일 테니까요. 이렇게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자동차에 연료를 넣기 위하여 주유소에 들어갔습니다. 주유소 직원이 연료를 넣으면서 자동차 앞 유리를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유리를 다 닦고 나자 운전석에 있던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러우니 한 번 더 닦아줘요.”
라고 했습니다. 직원은 알았다고 하면서 다시 자세히 살피면서 닦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화를 내며,
“아직도 더럽군! 아니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다시 닦아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직원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유리를 살피며 닦았지만 더러운 곳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크게 화를 내며,
“유리창이 여전히 더럽군! 주인에게 말해서 저 사람을 일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라고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옆 좌석의 아내가 남편을 잡으면서 안경을 벗겨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휴지로 깨끗하게 렌즈를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다시 안경을 씌워주었습니다. 남편은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유리창은 깨끗하게 잘 닦여 있었습니다.
이처럼, 남을 행복하게 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더러운 안경으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땀 흘리는 수고로 돈을 많이 버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많이 쓰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꾸어 가시는 것이므로 반드시 사랑과 행복과 물질로 갚아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