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의 관계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789회
작성일
2003-01-03 17:05
♡♥♡♥♡ 사랑과 행복의 관계 ♡♥♡♥♡
♧♣♧♣♧ 요한복음 13:34-35 ♧♣♧♣♧
우리는 올 해를 사랑과 행복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워낙 의미가 넓은 것이어서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나 행복이라는 것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줄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랑이나 행복은 자신이 누리고 있지 못하면 나눌 수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히 담아야 하는데…
어떤 성도가
‘하나님께서는 과연 자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
라는 의문 때문에 신앙의 바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직장으로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그가 집을 나왔을 때 파이프 하나가 지붕으로부터 땅 밑으로 들어가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파이프 옆을 지나갈 때,
“여기서 서라, 이 파이프가 땅 속으로 들어간 수채 밑을 살펴보아라.”
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지나가서 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는 생각이 나서 다시 집으로 갔습니다. 다시 그 파이프 곁을 지나게 되었는데 조금 전과 똑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에 서서 수채 밑을 살펴보아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서 잊어버린 것을 찾아서는 다시 자동차로 향했습니다. 또 한번 그 파이프 옆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세 번째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서 이 수채 밑을 살펴보아라.”
“아이 귀찮아, 열어봐야 되겠군.”
하면서 수채 덮개를 열었습니다. 수채 밑에는 물에 흠뻑 젖은 참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어제 저 지붕에서 놀다가 폭풍과 비에 밀려서 파이프를 통해 여기 수채 밑에 묻혀 있는 것을 내가 안다면. 어째서 내가 너의 모든 형편을 알 수 없겠는가?”
라는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그 성도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마태복음10:30-31절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세밀하십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사랑을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내성적인 할머니 성도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어느 주일에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솔직하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목사님은 할머니에게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도록 힘쓰고, 자그마한 것이라도 사랑의 마음을 나누도록 해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이웃이 이사를 가고 그들이 살던 집이 비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곧 그 집에 이사 올 새로운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드디어 새 이웃의 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는 날이 되자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가게 문을 두드리면서 쇼핑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지고 이사 온 집으로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길 건너 사는 사람입니다 방금 이사 오셨지요? 아침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좀 가지고 왔어요.”
마침내 할머니는 그토록 망설여왔던 사랑의 표현을 시작한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할머니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고 머지않아 그 가족 전원이 교회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누리고 전함으로서 행복해진답니다.
♧♣♧♣♧ 요한복음 13:34-35 ♧♣♧♣♧
우리는 올 해를 사랑과 행복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워낙 의미가 넓은 것이어서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나 행복이라는 것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줄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랑이나 행복은 자신이 누리고 있지 못하면 나눌 수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히 담아야 하는데…
어떤 성도가
‘하나님께서는 과연 자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
라는 의문 때문에 신앙의 바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직장으로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그가 집을 나왔을 때 파이프 하나가 지붕으로부터 땅 밑으로 들어가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파이프 옆을 지나갈 때,
“여기서 서라, 이 파이프가 땅 속으로 들어간 수채 밑을 살펴보아라.”
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지나가서 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는 생각이 나서 다시 집으로 갔습니다. 다시 그 파이프 곁을 지나게 되었는데 조금 전과 똑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에 서서 수채 밑을 살펴보아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서 잊어버린 것을 찾아서는 다시 자동차로 향했습니다. 또 한번 그 파이프 옆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세 번째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서 이 수채 밑을 살펴보아라.”
“아이 귀찮아, 열어봐야 되겠군.”
하면서 수채 덮개를 열었습니다. 수채 밑에는 물에 흠뻑 젖은 참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어제 저 지붕에서 놀다가 폭풍과 비에 밀려서 파이프를 통해 여기 수채 밑에 묻혀 있는 것을 내가 안다면. 어째서 내가 너의 모든 형편을 알 수 없겠는가?”
라는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그 성도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마태복음10:30-31절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세밀하십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사랑을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내성적인 할머니 성도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어느 주일에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솔직하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목사님은 할머니에게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도록 힘쓰고, 자그마한 것이라도 사랑의 마음을 나누도록 해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이웃이 이사를 가고 그들이 살던 집이 비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곧 그 집에 이사 올 새로운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드디어 새 이웃의 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는 날이 되자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가게 문을 두드리면서 쇼핑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지고 이사 온 집으로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길 건너 사는 사람입니다 방금 이사 오셨지요? 아침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좀 가지고 왔어요.”
마침내 할머니는 그토록 망설여왔던 사랑의 표현을 시작한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할머니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고 머지않아 그 가족 전원이 교회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누리고 전함으로서 행복해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