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있기에...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256회
작성일
2003-07-29 15:48
♡♥♡♥♡ 소망이 있기에 .... ♡♥♡♥♡
♧♣♧♣♧ 고린도전서 13:13 ♧♣♧♣♧
중세 시대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을 ‘대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낙관주의도 역시 치명적인 죄이며, 그것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대치하려는 시도도 같은 죄입니다.
낙관주의는 “걱정 하지 마.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끝까지 일을 다룰 수 있는 보다 훌륭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야”라고 말합니다. 낙관주의는 “기운 내”라고 말하고, 소망은 “하나님을 의지하라. 너의 구원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백일몽(白日夢)도 아니며, 신기루(蜃氣樓)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현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분투하는 ‘소망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로마의 박해가 심하던 초대교회 당시였습니다.
어떤 어머니와 그녀의 어린 아들이 기독교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로마의 원형극장에 던져졌습니다. 잠시 후, 사자 굴의 문이 열렸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은 으르렁거리면서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를 보고서 어머니의 품에 꼭 안기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어머니는 아들의 몸을 꼭 안아주면서 조용히 말합니다.
“얘야, 눈을 꼭 감고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곧 눈앞이 환하게 밝아올 것이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 감옥에 끌려가면서도, 또 매를 맞으면서도, 심지어는 사자굴 속으로 던져지면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위대합니다. 세상의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견디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바라는 소망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소망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며, 육신의 삶에 한정되는 것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은 영원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에게 획기적인 상품이 출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희망 사항을 입력시키기만 하면 이상적인 상대를 소개시켜주는 컴퓨터였습니다.
한 노처녀가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서 부푼 가슴을 안고 자신의 희망 사항을 입력시켰습니다. 과연 이런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평소에 늘 꿈꾸어 오던 모든 사항을 입력시켰습니다.
♥ 즐겁게 해달라면 언제나 멋진 음악과 춤을 선사할 수 있고
♥ 우울할 때는 풍부한 유머 감각으로 웃겨주고
♥ 심오한 지식을 갖춘 지성미로 지적 욕구를 채워주며
♥ 경제적 감각과 정치적 소신이 있으며
♥ 언제나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잘 놀아주며
♥ 휴일엔 항상 가족과 함께 하며 즐거움을 베풀며
♥ 그리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즉시 입을 굳게 다무는 상대를 골라주세요!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에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출력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한 대 사시오”
여러분의 소망은 이런 것이 아니겠지요? 나를 위해 예비 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시다.
♧♣♧♣♧ 고린도전서 13:13 ♧♣♧♣♧
중세 시대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을 ‘대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낙관주의도 역시 치명적인 죄이며, 그것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대치하려는 시도도 같은 죄입니다.
낙관주의는 “걱정 하지 마.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끝까지 일을 다룰 수 있는 보다 훌륭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야”라고 말합니다. 낙관주의는 “기운 내”라고 말하고, 소망은 “하나님을 의지하라. 너의 구원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백일몽(白日夢)도 아니며, 신기루(蜃氣樓)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현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분투하는 ‘소망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로마의 박해가 심하던 초대교회 당시였습니다.
어떤 어머니와 그녀의 어린 아들이 기독교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로마의 원형극장에 던져졌습니다. 잠시 후, 사자 굴의 문이 열렸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은 으르렁거리면서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를 보고서 어머니의 품에 꼭 안기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어머니는 아들의 몸을 꼭 안아주면서 조용히 말합니다.
“얘야, 눈을 꼭 감고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곧 눈앞이 환하게 밝아올 것이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 감옥에 끌려가면서도, 또 매를 맞으면서도, 심지어는 사자굴 속으로 던져지면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위대합니다. 세상의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견디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바라는 소망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소망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며, 육신의 삶에 한정되는 것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은 영원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에게 획기적인 상품이 출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희망 사항을 입력시키기만 하면 이상적인 상대를 소개시켜주는 컴퓨터였습니다.
한 노처녀가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서 부푼 가슴을 안고 자신의 희망 사항을 입력시켰습니다. 과연 이런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평소에 늘 꿈꾸어 오던 모든 사항을 입력시켰습니다.
♥ 즐겁게 해달라면 언제나 멋진 음악과 춤을 선사할 수 있고
♥ 우울할 때는 풍부한 유머 감각으로 웃겨주고
♥ 심오한 지식을 갖춘 지성미로 지적 욕구를 채워주며
♥ 경제적 감각과 정치적 소신이 있으며
♥ 언제나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잘 놀아주며
♥ 휴일엔 항상 가족과 함께 하며 즐거움을 베풀며
♥ 그리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즉시 입을 굳게 다무는 상대를 골라주세요!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에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출력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한 대 사시오”
여러분의 소망은 이런 것이 아니겠지요? 나를 위해 예비 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