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위한 안식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4,323회
작성일
2006-03-19 17:33
*** 사람을 위한 안식
*** 이사야 58:13-14, 막 2:27-28
* 예수님과 함께 안식을
…
그 다음 우리는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이 방은 보다 친근감이 들고 안락한 곳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에 자주 오도록 하자. 은밀하고 조용하니 우리가 대화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겠구나.”
나는 감격에 잠겼습니다.
그 분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일찌감치 여기로 오겠다. 여기서 나와 만나 함께 일과를 시작하자꾸나.”
그러나 차츰차츰 여러 가지 책임 맡은 일들에 시달려, 이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는 시간이 줄어들다 못해, 때때로 날을 거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거실을 지나치다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고 주님께서 앉아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발길을 돌려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을 밑으로 떨구고서 말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아침마다 주님께서는 늘 여기에 오셨습니까?”
“그럼”
하고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매일 아침 여기에 오겠다고 말한 그대로다.”
이 모습이 혹시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지요?
활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놓아야 합니다. 현악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줄을 계속 팽팽하게 매어두면 결국에는 활이든, 악기이든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우리 사람도 계속해서 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하루씩은 쉬도록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주님과 만나는 시간, 우리 육신과 영혼을 위하여 주신 쉼의 시간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곧 평탄한 삶의 지름길입니다.
* 내가 한 그대로…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톨스토이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기독교의 전부인 걸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자유나 해방이 아닌 무거운 짐으로 인식한 나머지 그는 청소년 시절 홀연히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떠납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릅니다. 인생의 말년에 그는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발견합니다.
그의 나이 55세에 기록한 『신앙론』이라는 유명한 글에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최초의 15년을 빼놓고는 기쁨이나 행복이나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가 18세가 되던 해 한 친구는 내게 찾아와서 ‘신(神)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 설득에 매료되어 이 종교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안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종교는 분명히 속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내가 내어버린 어머니의 품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이제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삶은 어떠합니까? 시간이 부족하고, 급변하는 이 21C를 살아가기에 교회에 다니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지나친 부담이 되고, 무거운 멍에가 되어서 삶을 짓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헌금을 하는 것이 아깝고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어서 이러저러한 합리적인 궁리를 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필요한 것을 다 쓴 후에 남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한 그대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 이사야 58:13-14, 막 2:27-28
* 예수님과 함께 안식을
…
그 다음 우리는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이 방은 보다 친근감이 들고 안락한 곳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에 자주 오도록 하자. 은밀하고 조용하니 우리가 대화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겠구나.”
나는 감격에 잠겼습니다.
그 분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일찌감치 여기로 오겠다. 여기서 나와 만나 함께 일과를 시작하자꾸나.”
그러나 차츰차츰 여러 가지 책임 맡은 일들에 시달려, 이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는 시간이 줄어들다 못해, 때때로 날을 거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거실을 지나치다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고 주님께서 앉아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발길을 돌려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을 밑으로 떨구고서 말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아침마다 주님께서는 늘 여기에 오셨습니까?”
“그럼”
하고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매일 아침 여기에 오겠다고 말한 그대로다.”
이 모습이 혹시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지요?
활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놓아야 합니다. 현악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줄을 계속 팽팽하게 매어두면 결국에는 활이든, 악기이든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우리 사람도 계속해서 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하루씩은 쉬도록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주님과 만나는 시간, 우리 육신과 영혼을 위하여 주신 쉼의 시간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곧 평탄한 삶의 지름길입니다.
* 내가 한 그대로…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톨스토이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기독교의 전부인 걸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자유나 해방이 아닌 무거운 짐으로 인식한 나머지 그는 청소년 시절 홀연히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떠납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릅니다. 인생의 말년에 그는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발견합니다.
그의 나이 55세에 기록한 『신앙론』이라는 유명한 글에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최초의 15년을 빼놓고는 기쁨이나 행복이나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가 18세가 되던 해 한 친구는 내게 찾아와서 ‘신(神)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 설득에 매료되어 이 종교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안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종교는 분명히 속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내가 내어버린 어머니의 품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이제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삶은 어떠합니까? 시간이 부족하고, 급변하는 이 21C를 살아가기에 교회에 다니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지나친 부담이 되고, 무거운 멍에가 되어서 삶을 짓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헌금을 하는 것이 아깝고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어서 이러저러한 합리적인 궁리를 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필요한 것을 다 쓴 후에 남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한 그대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