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 행복한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187회
작성일
2004-05-22 22:14
♡♥♡♥♡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 ♡♥♡♥♡
<br>♧♣♧♣♧ 야고보서 1:27 ♧♣♧♣♧<br>
<br>**가치 있는 삶**<br>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날 한 것을 똑같이 되풀이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다. 똑같은 종류의 산봉우리를 넘고, 똑같이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서, 똑같이 끝없는 숲을 통과해야 했다.”
이 글은 산행(山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도 산행(山行)과 비슷합니다. 매일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사람의 바퀴를 끝없이 돌고 돕니다. 그러나 이 일을 어떤 시각으로 보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생애가 달라집니다. 만일 자신의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지루하고 고통스럽고 허무하게 생각한다면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반면에 그 밥 한 숟갈에 담긴 깊은 맛, 같은 일 같은 사람이 주는 기쁨과 고마움을 보고 느낄 줄 안다면 기쁨과 행복이 가슴에 풍요롭게 다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17세기의 작가 ‘라 브뤼예르’는,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전에 웃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웃어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고 힘쓰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자신이 행복의 가운데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혜령 시인의 ‘사랑은 서로 마주봄이 아니라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그가 착하고 공부 잘하고 온유하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끔 묻는 말에 대답도잘 안하며 게으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합니다. 그가 저를 실망시키는 순간이 있다 해도 저는 그것을 트집 잡아서 사랑의 점수를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됨과 성격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포용합니다. 사랑은 선택적이 아니라 수용적이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여러분 공감이 가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적어도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것만 챙기지 말고 주님처럼 남을 위하여 나의 것을 주고 희생하는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 봅시다.
** 행복의 초점**
세상에는 삶의 가치관이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 이거도 저것도 아닌 중간 형태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동의 태도도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보편적인 비율을 2:6:2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있으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2명, 이것도 저것도 아닌 유동층이 6명,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2명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100개 중에서 99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한 개만 가지고도 그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는 친구 아홉 명을 두고도 싫어하는 한 사람을 생각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소모하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를 이해해 주는 친구가 한 명뿐일 때조차도 한 명의 친구를 둔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가진 것을 외면하고 부족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세상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환경과 물질과 재능과 모든 것을 감사하며, 지금 주어져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곳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지도 않는 것을 기대하면서 현재의 일을 소홀히 하고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낭비한다면 결코 행복도 기쁨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망은 좋은 것이지만 진정한 소망은 현재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신실하고 정직하고 열심을 다하여 실천할 때에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2%입니까?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br>♧♣♧♣♧ 야고보서 1:27 ♧♣♧♣♧<br>
<br>**가치 있는 삶**<br>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날 한 것을 똑같이 되풀이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다. 똑같은 종류의 산봉우리를 넘고, 똑같이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서, 똑같이 끝없는 숲을 통과해야 했다.”
이 글은 산행(山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도 산행(山行)과 비슷합니다. 매일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사람의 바퀴를 끝없이 돌고 돕니다. 그러나 이 일을 어떤 시각으로 보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생애가 달라집니다. 만일 자신의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지루하고 고통스럽고 허무하게 생각한다면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반면에 그 밥 한 숟갈에 담긴 깊은 맛, 같은 일 같은 사람이 주는 기쁨과 고마움을 보고 느낄 줄 안다면 기쁨과 행복이 가슴에 풍요롭게 다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17세기의 작가 ‘라 브뤼예르’는,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전에 웃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웃어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고 힘쓰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자신이 행복의 가운데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혜령 시인의 ‘사랑은 서로 마주봄이 아니라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그가 착하고 공부 잘하고 온유하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끔 묻는 말에 대답도잘 안하며 게으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합니다. 그가 저를 실망시키는 순간이 있다 해도 저는 그것을 트집 잡아서 사랑의 점수를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됨과 성격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포용합니다. 사랑은 선택적이 아니라 수용적이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여러분 공감이 가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적어도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것만 챙기지 말고 주님처럼 남을 위하여 나의 것을 주고 희생하는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 봅시다.
** 행복의 초점**
세상에는 삶의 가치관이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 이거도 저것도 아닌 중간 형태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동의 태도도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보편적인 비율을 2:6:2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있으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2명, 이것도 저것도 아닌 유동층이 6명,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2명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100개 중에서 99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한 개만 가지고도 그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는 친구 아홉 명을 두고도 싫어하는 한 사람을 생각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소모하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를 이해해 주는 친구가 한 명뿐일 때조차도 한 명의 친구를 둔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가진 것을 외면하고 부족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세상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환경과 물질과 재능과 모든 것을 감사하며, 지금 주어져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곳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지도 않는 것을 기대하면서 현재의 일을 소홀히 하고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낭비한다면 결코 행복도 기쁨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망은 좋은 것이지만 진정한 소망은 현재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신실하고 정직하고 열심을 다하여 실천할 때에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2%입니까?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