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 위대한 마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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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7-24 20:05
*** 용서 - 위대한 마음 ***
*** 야고보서 1:15 ***
빅토르 위고의 명작인 ‘레 미제라블’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장발장’이며, 다른 한 사람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히는 형사 ‘자벨’입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서 세상이 뒤바뀌었을 때, 장발장을 존경하던 청년대원들은 눈의 가시 같던 형사 자벨을 잡아와서 총살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장발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자벨 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나를 살려줍니까?”
이 떄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발장의 말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더 넓고 하늘은 그보다 더 넓소. 그러나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오.”
그렇습니다. 용서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만 소인배는 할 수 없는 넓은 마음의 산물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대신 지도록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 사랑이 ‘용서’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세종대왕 때에 ‘민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그는 계모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았습니다. 계모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민손의 계모도 엄동설한에 자기가 낳은 친아들 두 명에게는 따뜻한 솜옷을 입혔지만 민손에게는 갈대 옷을 입혀 추위에 떨게 했습니다. 어느 날, 민손의 아버지가 민손을 불렀습니다.
“내가 관청에 가야겠으니 수레를 끌어라.”
추위에 떨던 민손이 아버지가 탄 수레를 잡자 수레가 요란하게 떨렸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춥느냐?”
“아닙니다.”
그래도 수레는 계속 떨렸습니다. 민손의 아버지는 민손이 입은 옷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때서야 민손이 입은 옷이 얇은 갈대로 지은 옷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화가 치민 민손의 아버지는 계모를 불러 고함을 쳤습니다.
“아니, 여보 이럴 수가 있소. 손이의 옷이 그게 뭐요? 이 추운 겨울에 … 당장 이집에서 나가요!”
난처해진 것은 민손이었습니다. 민손은 아버지에게 공손히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춥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가시게 되면 세 아들이 다 추울 것입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계모는 눈물을 흘리면서, “손아! 내가 잘못 생각하였구나. 내가 죽을 짓을 했구나.”
야고보서 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은 악을 낳고,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부릅니다. 그러나 용서는 평화를 낳고 사랑은 더 큰 사랑을 부릅니다.
*** 야고보서 1:15 ***
빅토르 위고의 명작인 ‘레 미제라블’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장발장’이며, 다른 한 사람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히는 형사 ‘자벨’입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서 세상이 뒤바뀌었을 때, 장발장을 존경하던 청년대원들은 눈의 가시 같던 형사 자벨을 잡아와서 총살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장발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자벨 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나를 살려줍니까?”
이 떄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발장의 말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더 넓고 하늘은 그보다 더 넓소. 그러나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오.”
그렇습니다. 용서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만 소인배는 할 수 없는 넓은 마음의 산물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대신 지도록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 사랑이 ‘용서’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세종대왕 때에 ‘민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그는 계모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았습니다. 계모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민손의 계모도 엄동설한에 자기가 낳은 친아들 두 명에게는 따뜻한 솜옷을 입혔지만 민손에게는 갈대 옷을 입혀 추위에 떨게 했습니다. 어느 날, 민손의 아버지가 민손을 불렀습니다.
“내가 관청에 가야겠으니 수레를 끌어라.”
추위에 떨던 민손이 아버지가 탄 수레를 잡자 수레가 요란하게 떨렸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춥느냐?”
“아닙니다.”
그래도 수레는 계속 떨렸습니다. 민손의 아버지는 민손이 입은 옷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때서야 민손이 입은 옷이 얇은 갈대로 지은 옷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화가 치민 민손의 아버지는 계모를 불러 고함을 쳤습니다.
“아니, 여보 이럴 수가 있소. 손이의 옷이 그게 뭐요? 이 추운 겨울에 … 당장 이집에서 나가요!”
난처해진 것은 민손이었습니다. 민손은 아버지에게 공손히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춥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가시게 되면 세 아들이 다 추울 것입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계모는 눈물을 흘리면서, “손아! 내가 잘못 생각하였구나. 내가 죽을 짓을 했구나.”
야고보서 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은 악을 낳고,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부릅니다. 그러나 용서는 평화를 낳고 사랑은 더 큰 사랑을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