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신앙
*** 가난과 신앙 ***
*** 로마서 8:17 ***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
해석은 이렇습니다.
‘술 먹고 밥 먹을 때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친구는 천 명이나 있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줄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
명심보감 성심편에는 이런 글도 있습니다.
“貧居鬧市無相識(빈거요시무상식)이요 富住深山有遠親(부주심산유원친)이니라.”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시장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고, 넉넉하게 살면 깊은 산 중에 살아도 먼 데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느니라.’
“人義 盡從貧處斷(인의 진종빈처단)이요 世情 便向有錢家(세정 변향유전가)니라.”
‘사람의 의리는 다 가난한 데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곧 돈 있는 집으로 쏠리느니라.’
세상의 이치를 정말 잘 간파한 내용들입니다. 세사의 사람들의 삶은 이러합니다. 가난하거나, 출세하지 못한 사람, 인생의 실패자들에게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잠언 19:7절입니다.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그런데 오늘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은 ‘자신의 가정이 사업에 실패하여 어렵지만 그 사실을 교회에 말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알면 교인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손가락질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는 신앙이 좋으면 만사형통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생각하며,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잘 못 믿었기 때문이라는 사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그렇게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2:21절에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 하시며, 로마서 8: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도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로 신앙을 저울질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하는 사랑의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