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만(欺瞞)하면
*** 하나님을 기만(欺瞞)하면 ***
*** 갈라디아서 6:7-8 ***
사람의 간사한 마음을 빗대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합니다. 위기의 때나 다급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온갖 약속을 하면서 모면하려 합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회복되고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모르는 척을 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미 소가 두 마리의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송아지가 자라 코뚜레를 할 때가 되자 맏이 송아지가 농부한테 사정했습니다.
"저한테는 코뚜레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가 되고 말텐데."
"아닙니다, 주인님. 코뚜레를 하여야만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옛날 생각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으니 일을 곱절로 잘한다는 말을 제가 듣고 말테니까요."
농부는 맏이 송아지의 말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송아지한테만 코뚜레를 했습니다. 맏이 송아지는 약속대로 코뚜레 없이도 스스로 멍에를 지고 쟁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코뚜레를 한 아래 송아지가 지쳐 쉴 때는 더욱 힘을 내어 달구지를 끌기도 했습니다. 농부도 신기해하며 기뻐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송아지들이 어른 소가 되었습니다. 코뚜레를 하지 않은 맏이한테 차츰 꾀가 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맏이 소는 일을 피해 달아나기도 했으며, 잡으러 오는 농부를 뒷발로 차기까지 했습니다. 농부는 화를 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네놈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지”
그러던 어느 날 코뚜레를 한 동생 소가 들에서 돌아와 보니 맏이가 없었습니다. 동생 소가
“맏이 소는 어디에 갔습니까?”
라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도살장으로 보냈지."
부리는 짐승인 주제에 주인을 농락했으니 도살장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여러분이 주인이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입장을 바꾸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약속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러저러 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충성하며 물질을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서 일들이 잘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제는 답답한 것이 없으니 그런 약속은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살장으로 보내야지!”
그 도살장이 지옥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