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은?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945회
작성일
2015-07-22 23:11
*** 나의 관심은? ***
*** 야고보서 2:15-17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W. Booth) 장군이 런던에서 구세군의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부스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 일을 두고 어떤 사람들이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 일은 인간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책임을 맡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부스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발에 동상이 걸려 썩어 가고 있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만으로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약 2:15-17).
‘지스문트 겟치’라는 화가의 작품 중에, ‘버림받은 예수’란 그림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 바울 대성당’의 계단에 예수님이 서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스포츠 신문에 열중한 청년, 휴가 여행을 위하여 택시를 잡으려는 남녀, 길을 가면서도 시험관을 들여다보고 있는 과학자,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이 거기에 서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습니다. 신부 서너 명이 둘러서서 팔을 휘두르며 열렬히 토론하고 있지만 역시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한사람, 간호사 제복을 입은 여성만이 잠깐 멈추어 곁눈으로 예수님을 보는 장면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분명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부스 장군의 반문 속에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균형 잃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예수’의 그림은 신앙의 본질을 상실한 현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가? 나의 생활 전체로 볼 때 예수님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작은 존재가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직장의 일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세상 일 보다 비중이 낮은 것입니다.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아니면 ‘몇 십만 원을 벌 것인가?’ 그런 선택에서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혹시 몇 만 원을 벌기 위하여 예수님을 멀리 젖혀 놓는 우리는 아닙니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그 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며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듯이, 우리는 세상 사람에 대한 관심과 주님에 대한 관심을 매일의 삶에서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