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
*** 내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 ***
*** 로마서 9:31-32 ***
롬 9:31-32절입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이스라엘이 실족한 원인은 ‘믿음을 버리고 행위를 따랐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위는 올바른 것이었겠습니까? 롬 10: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행위는 하나님의 의를 따르지 않고, 자기 의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협하는 신앙 형태입니다. 즉, 자기 경험, 자기를 드러내는 의, 자기 확신을 따라 행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입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힘들고 어려울 때 도우시는 분쯤으로 인식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주인이자 모든 피조물의 주권자이심을 믿는다면, 내 삶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 중심으로 행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0:2-5절을 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표현한 이 말씀이,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하게 나타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의 실정은 이러하지를 못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주관, 자기 경험, 자기 확신을 나타내는 자기중심적 생활로 가득합니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영국 성공회 교인인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글에 이런 풍자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푸쉬’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가 런던을 방문했습니다. 루이스는 런던을 방문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푸쉬야, 푸쉬야, 너 어디 갔다 오니?” 그러자 고양이는 “예, 나는 여왕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루이스가 다시 물었습니다. “푸쉬야, 거기서 너는 무엇을 보았니?” 그러자 고양이는 “나는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루이스는 이 짧은 풍자를 통하여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꼬집습니다. 고양이는 런던에서, 그것도 그 아름다운 왕궁에 가서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찬란한 궁궐이나 아름다운 역사적인 사적들을 본 것이 아닙니다. 겨우 여왕의 의자 밑에 기어 다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에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가 생쥐였기 때문입니다. 루이스는 이 풍자를 통하여 사람들도 자신의 가장 큰 관심거리에 마음을 두게 되며 그것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루이스 이야기의 고양이처럼, 궁궐에 있을지라도 고양이의 관심은 오직 먹이에 있듯이, 하나님을 믿지만 생활은 여전히 세상의 관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적 신앙의 모습이며 가장 위험한 자기 확신의 신앙입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기 확신 신앙이라고 합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