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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는 메시아(사11:1-9)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607회 작성일 2001-07-14 12:59
Title 예수, 그는 메시아 / Scripture 사11:1-9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작은 몸집을 가졌지만 모든 동물들에게 생명의 위협이 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방울뱀’입니다. 방울뱀은 독을 뿜는 치명적인 송곳니로 코끼리마저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울뱀과 싸울 때는 독이 나오는 송곳니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자나 늑대도 영토 내의 주도권 쟁탈을 위해서 싸우지만 상대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미물들이지만 나름대로의 공존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平和)’라는 단어의 평안할 평(平) 자는 심장 두 개가 나란히 공존하는 모양새를 나타내는 평화의 이념입니다. 합할 화(和) 자는 口(입구) 변에 禾(벼화)가 붙어 있습니다. 즉 입 속에 밥이 있다는 ‘경제적 평화’를 의미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을거리가 풍족하면 싸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풍족한 듯이 여겨지는 오늘의 세계가 왜 이렇게 소란스럽습니까? 사실은 풍족이 아니라 세계인구의 절반이 넘는 절대 다수가 빈곤합니다. 하지만 인간 세계는 빈곤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만은 아닙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지요. 미물만도 못한 행태를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평화의 소식보다는 우려하고 염려하는 소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온실 효과 감축 협상, 지뢰 금지 협상, 통상 압력, 군축 협상, 자원 고갈, 대체 에너지 개발, 우주 개척, 해양 개발 등등. 참으로, 평화의 주님이 절박한 계절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환경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社會的으로는 폭력이 난무하고, 인권이 유린당하고, 전쟁의 위협이 계속되고, 政治的 불안, 經濟 위기, 고용 불안 등. 어느 곳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악순환 되는 산적한 문제들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메시아(Messiah)의 평화가 절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메시아를 찾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을 메시아로 삼고, 권력을 메시아로 삼고, 지식을 메시아로 삼고, 자원, 물질을 메시아로 삼습니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친숙한 표현은, 를 헬라어로 번역한 그리스도(Χρὶστὸς)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 Messiah’라는 말로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메시아사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서였습니다. 기원전 586년에 남 유다 왕국이 멸망한 뒤로는 더 이상 이스라엘에서 왕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400여년을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선지자도 없는 영적인 암흑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어떤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대적들을 멸하고, 민족을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기를 고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대적들을 멸하고 자신들을 구원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이것을 이라 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정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지는 나약한 메시아가 아닌 힘과 능력으로 무장한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실망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엠마오로 낙향하던 두 제자를 통하여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24:21절 상반절에서,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토로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고대하던 바로 그 때의 상황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르지만 제각기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1. 예수님은 메시아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도래 시기는 말세 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종말이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6절에서는,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분명한 종말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더 이상 죄악 속에 머물러 방황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포입니다. 즉 고통과 질고 속에서 허덕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자로 확신 있게 서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인간이 더 이상 죄로부터 도피하는 자가 아님을 선언한 것이며,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 생명을 소유한 새로운 질서로 인도하시는 메시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와 담대하게 맞서서 싸워야 하며, 자유와 생명을 지키고 또한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은혜를 동반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은 사람이 자기 개발과 탐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메시아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에 대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사도행전2:3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외쳤습니다.
말세의 성도들은 성령을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때까지라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성도로 하여금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롬8:26).

2. 예수님은 통치자이십니다.

본문3-5절을 봅시다.
메시아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최고의 통치자인 왕의 기능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의 호칭이 39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30회가 왕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본래 기능은 다스리는 왕의 기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의 기능 중에서 가장 우선적인 기능은 백성들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사 시대의 사사들도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옷니엘, 기드온, 삼손 등의 사사들도 대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사들은 Messiah가 아니라, <모시아, אישׁמ>, 즉 ‘구원자’로 불렸습니다. 사사들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 <모시아>가 되어 백성들을 구해 주었지만, 완전한 통치를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왕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메시아가 되어 백성들을 구원했으며, 그들을 다스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메시아는 평화를 유지하는 자, 즉 전쟁을 끝나게 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이미 오셨지만, 이 땅의 전쟁은 그치지를 않고, 평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이 땅에 평화가 이룩되지 않습니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기원전 733년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 때, <베가>는 남 유다의 왕인 <아하스>에게 자기들과 동맹을 맺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동맹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은 앗시리아 공격에 앞서, 먼저 남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이런 위기일발에 놓인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임마누엘 예언을 전하셨습니다.
- 사7:3-4,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러나 아하스는 이것을 거부하고 이방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아하스>가 패망한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사7:12, 8:6-8). 여기서 임마누엘 징조란? 인간적인 힘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아하스 왕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전쟁의 위기 극복이나 국가 존립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만 가능합니다. 비단 국가나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동일합니다. 개개인에게 적용될 때는 목자의 기능을 가지는 것입니다. 목자의 기능은 양들을 인도하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화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3. 예수님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메시아십니다.

본문5절을 봅시다.
본문에서 메시아는 “공의와 성실”로 다스리는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평하게 재판하며 불의를 인정치 않는 것을 말합니다. 불평등하게 처리하여 억울함을 당하는 자가 없는 사회, 한 맺힌 자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눈물나는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입니까? 부와 권력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돈 있고 권력 있으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태연합니다. 하지만 나약한 소시민들은 그들의 희생양으로 취급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오히려 전쟁의 소문들만 더욱 무성할 뿐 어디에도 평화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메시아뿐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소유한 사람들에게서는 주님의 평화가 샘솟듯 솟아난다고 하셨습니다.
-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불안한 세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성실과 정의가 인정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메시아의 모습을 따라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메시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메시아를 따라가는 닮은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메시아의 다스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 메시아가 완성하실 정의 사회를 이 땅에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메시아의 추종자인 우리가 이 메시아를 전하며, 또한 이 세대에 성실과 정의를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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