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의 부르심과 요청(야고보서4:1-10)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005회 작성일 2001-06-05 16:34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15-1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갈라디아서4:6절에서는,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이유로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딸이 믿지 않는 남자와 연애를 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눈물로 극구 말리는 데도 딸은 듣지 않고 기어이 자신의 뜻대로 결혼을 했습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딸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물론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녀의 외아들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끝내 불신앙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결국 아들은 죽었고, 그제야 교회를 찾아가서 너무나 괴롭고 답답한 마음을 목사님께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하나뿐인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합니까?”회개는 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자기가 목회자의 자녀라는 사실도 고백하면서 갖은 넋두리로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듣다 못한 목사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그 정도 얻어 터져야 10년만에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을 어떡합니까?” 웬만하면 좋은 말로 위로하고 싶었는데, 줄곧 못된 말로 원망하는 것을 보고 신중하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고는 당신이 제 발로 교회를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 일이 있게 된 것은 당신을 부르기 위해서이다.’라고 깨우쳐주려 한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회개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 밑창에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나오도록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사람으로 하여금 왜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으시는 것입니까? 거절하고 피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실 수는 없을까요? 본문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사람이 다른 우상에게로 가는 것을 질투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 ꁾ사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신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사람들의 상반되는 두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세상의 쾌락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이와 같은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 선생을 통하여 경고하십니다. 다툼과 싸움과 시기와 살인 등,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폭풍은 인생의 욕망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함도 욕망의 담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려져 있는 담들을 적극적으로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1. 욕망의 충족을 따르는 삶은 파멸을 부릅니다.

사람의 욕망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거센 폭풍과도 같습니다. 어떤 욕망이 사람을 사로잡으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은 모든 것을 삼키고야 마는 것입니다. 생명까지도 말입니다. 마약 중독, 알코올중독, 도박, 축재, 권력, 명예, 등등. 그래서 과도하게 세상적인 것을 추구한 결과는 ‘싸움’(전쟁)과 ‘다툼’(투쟁)을 부릅니다.
세상적인 욕망의 추구는 전쟁과 같은 오랜 기간에 걸친 원한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욕망의 만족을 위한 투쟁은 증오와 같은 독소를 뿜어냅니다. 오죽했으면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겠습니까? 오늘 세계는 이러한 개인이나 집단의 욕망을 위한 이기주의로 병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갈5:15-16절을 보십시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사람에게 일어나는 욕망은 스스로가 다스릴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욕망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그 다음은 사막의 모래펄에 빠진 것처럼 더욱 깊이 빠져들 뿐입니다. 만일 눈으로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면 거리의 여자는 전부가 임신부일 것이고, 눈으로 살인할 수 있다면 거리는 시체로 가득 찰 것이며, 눈으로 물건을 훔칠 수 있다면 상점은 텅 빌 것이며 온 종일 물건들이 옮겨 다니느라 북새통일 것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욕망이든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의 범위를 마음의 생각의 폭에까지 넓히신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욕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마음 한 편에서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지!’라는 결심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아니, 그러면 뭘 먹고 살지! 적당히 해야지! 하나님도 아실거야!’ 라고 현실을 변명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7:19,21절에서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자신의 갈등어린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욕망으로 인한 세상적인 근심은 영혼과 육신의 죽음을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욕망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욕망을 이길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2. 파멸을 면하는 길은 하나님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세상적인 욕망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대적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본문7-10절을 봅시다.

지금 우리들에게 특별히 요청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청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준비되어야 합니까? 골로새서3:9-10절을 봅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즉 세상적으로 끊임없이 추구하는 욕망을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인도에 간 「알렉산더」가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를 만났는데, 그는 강가에 누워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에게는 그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벌거벗은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평온, 침묵, 그리고 그의 아름다움, 당당함, 고상함, 소박함, 자연스러움, 이 모든 것이 알렉산더를 사로잡았습니다. 순간 강한 질투를 느낀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신에게 ‘다음에는 나를 알렉산더가 아니라 디오게네스로 태어나게 해 주소서.’ 라고 기도할 생각이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폐하는 지금 당장이라도 디오게네스가 될 수 있습니다. 누가 폐하를 막는단 말입니까? 당장이라도 저처럼 이렇게 일광욕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알렉산더는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그렇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소! 그러나, 온 세계를 정복한 후에 당신처럼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즐길 것이오.” 그 말을 이어 디오게네스가 말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저는 세계를 정복하지 않고도 이렇게 즐길 수 있는데, 폐하는 왜 지금 당장 즐기실 수 없다는 겁니까? 왜 폐하는 지금 당장 하실 수 있는 일을 뒤로 미루시는 것입니까? 이 강둑은 충분히 넓어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여기에 계신다 하더라도 제 자리가 조금도 좁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둑은 충분히 넓은데도 아직 아무도 오지 않군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알렉산더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알렉산더처럼 지금은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아서 다음으로 실천을 미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미 크리스천’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어중간한 그리스도인’이란 의미로 말입니다.

디오게네스의 주장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초청하신 말씀과 흡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1:28-30절에서 인류를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주님은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요청을 수락해야 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미 그리스도인’들은 그 초청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때가 한없이 많이 있는 줄로 여기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어느 때에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이야말로 일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때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를 부르셨고,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6:1-2절을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를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지금 손을 깨끗하게 하고, 지금 마음을 성결케 하고, 지금 겸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는 더 이상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있을 때,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요청을 받아들입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세상 것들을 바라던 욕망들을 하나남의 뜻 안에서 선한 열심으로 바꿉시다. 그리하여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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