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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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앙의 모험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8,071회 작성일 2010-05-07 13:27

***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앙의 모험

여호수아 2:1-14,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 들어가는 말

 

어린이주일에 성장하는 아이들의 비전을 심도록 하는 말씀으로 전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혀 아깝지 않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애지중지 하면서 아끼고 또 아끼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가치란 고유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나에게는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았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그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향유 옥합을 깨뜨렸고,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일평생 동안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삽니다. 그러므로 단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을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대머리 친구가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의 머리카락은 자꾸만 빠지더니 결국 손으로 셀 정도의 양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언제나 머리빗을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거울을 들여다보고 빗질을 해댑니다. 친구들이 “빗어 넘길 머리카락도 없는 주제에 웬 빗질이냐?”고 핀잔을 주면 그는 정색을 합니다. “야, 머리숱이 많은 너희들은 한 올의 머리카락이 소중할리 없겠지만, 머리카락이 얼마 남지 않은 자기로서는 마치 ‘오 헨리’의 단편에 나오는 ‘마지막 잎새’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어디 그 친구뿐이겠습니까? 현대인들은 자신의 소유라고 인식되는 것들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씁니까? 어떤 사람은 건강과 정력에 좋다는 이야기를 믿고 독사를 하루에 두 마리 씩 2년간이나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뱀독이 올라서 생명이 위태롭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할 그런 자세입니다. 그런데 잠언 23:5절에서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즉 일시적인 헛된 꿈을 좇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헛된 것을 쫓아다니기에 우리 생명은 너무 짧고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어떤 것을 쫓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상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하여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앙적인 모험의 삶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지금 거론하려는 인물은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에 살고 있는 기생 ‘라합’입니다. 라합은 기생이라는 천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에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즉 가장 천한 인생인 라합이 믿음의 명예의 전당인 히브리서 11장에 언급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고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여리고 성으로 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두 정탐꾼은 가장 숨기 쉬운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라합은 이들이 이스라엘 정탐꾼임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집에 유숙시켰습니다. 정탐꾼이 침투했다는 보고를 들은 여리고 왕은 라합에게 연락하여 ‘네 집에 유숙한 이스라엘의 간첩을 끌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들을 지붕에 숨기고 그들이 왔다가 이미 떠나버렸다고 허위 보고를 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이 숨어 있는 지붕에 올라가서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알기 때문에 나나 이 땅 백성이 두려워한다. 우리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마르게 하시고, 아모리의 두 왕을 전멸시킨 일을 다 들었기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 그러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후에 내 부모 형제들을 살려 주겠다고 여호와 앞에 맹세하고 진실한 표를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임을 알고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하여 위험한 모험을 한 것입니다.

정탐꾼들로부터 약속을 받은 라합은 그들을 줄로 달아서 내려 도피시켰습니다. 정탐꾼들은 도망하기에 앞서 라합에게 전쟁이 시작되거든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표시하면 그 집에 있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여리고 성의 모든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전쟁에서 라합의 온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흡수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6:25절에서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라고 합니다. 라합은 위대한 신앙 위인 중의 한 사람이 되고, 후에 룻의 남편이 된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어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받는 천한 기생이 모든 사람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인물로 대변신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신이 가능했겠습니까?

1. 가치관이 바뀌어야 삶이 바뀝니다.

무엇이 천한 라합으로 하여금 위대한 생애를 남기게 했습니까? 그것은 라합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었습니다. 라합은 이방여인으로서 천한 기생이었지만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라합은 성벽 위에 집을 짓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끌어들여 먹고 사는 천한 기생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천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무엇이 중요한 것이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라합은 광야를 여행하는 나그네들을 통하여 당시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나온 것과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강한 아모리의 두 왕인 시혼과 옥을 죽이고 정복한 일까지도 알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일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이 이처럼 이스라엘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이 있었지만 이러한 지식만으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라합이 자신의 지식으로 가치관이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라합은 자신의 민족들로부터도 결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멸시와 천대의 눈길로 심한 모멸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의 민족을 스스럼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과 가족부양을 위하여 그 멸시와 모멸의 눈길을 견디며 오로지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분의 비천함을 재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을 알고 하나님을 알면서부터 그녀의 가치관은 바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정탐꾼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신이 찾아갈 수도 있을 정도의 열정이 있음을 봅니다. 다행히 정탐꾼을 만나면서 자신의 변화된 가치관을 실행했습니다. 로마서 8:5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라합은 자신이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신앙을 따르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정탐꾼들을 숨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오랜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과 민족과 자신이 살아온 삶의 터전과 자신의 이웃들을 모두 버리고, 생소한 다른 신과 다른 백성을 따른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지 않고서는 결코 이런 결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9: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시며, 14:26-27절에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확실한 가치관의 변화와 확실한 삶의 변화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세상의 것들이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까? 가치관이 변해야 삶이 변할 수 있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2. 최상의 가치 추구는 신앙적 모험이 따릅니다.

라합과 모든 가족이 구원을 받고 선민의 대열에 들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믿음을 기초로 하는 두려움 없는 결단력 때문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만 듣고서도 하나님을 믿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편에 가담했습니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작은 습관하나를 버리고 바꾸는 것에도 어려움을 많이 느낍니다. 하물며 신앙을 바꾸고 민족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행동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믿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아는 것이나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속하는 믿음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입니다. 마태복음 13:14-16절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두 비유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천국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소유해야 할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는 신앙적인 모험의 삶이 요구됩니다. 즉 라합처럼 보다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생명의 위기를 감수하는 신앙적인 모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자신은 손해 보는 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최상의 가치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8:34절에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놓는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받은 줄로 믿는 믿음도 역시 신앙적인 모험입니다.  

많이 들었던 예화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홍수가 나서 온 마을에 물이 밀려들고 있을 때,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이 그의 집 1층 창문 밖을 내다보며 배를 타고 있는 다른 사람을 태연히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배에 탄 사람들이 그에게 “이 배로 와서  생명을 구하시오!”라고 하자, 그는, “아니오, 나는  주님이 구해주심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층에 물이 차게 되자, 곧 그 불쌍한 친구는 2층으로 올라가서 창문에서 내다보았습니다. 다시 배에 탄 사람이 그에게 와서 생명을 구하라고 했지만, 그는 “아니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구조를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때, 헬리콥터가 날아와 그의  머리 위에서 배회하며 구조대원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가 로프를 내려주겠소. 그걸 타고 헬리콥터로 올라와서 생명을 구하시오! 더 이상 기회가 없소!” 지붕 꼭대기에 앉아 궁지에 빠진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주님이 구해주심을 믿습니다.”
결국 그 불쌍한 남자는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천국 문에서 베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저는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 마음속에서 이 불만을 없애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게 믿어 왔는데, 결국 하나님은 저를 죽게 내버려두셨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그 밖의 다른 대책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배를 두 번, 헬리콥터를 한 번 보냈다.”

이 이야기는 이기적인 신앙의 고집과 동시에 신앙적인 모험을 거부한 안일한 신앙인에 대한 경고성 이야기입니다.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준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늘 우리도 영원한 생명과 삶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단호한 신앙의 결단과 모험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1:8절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했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일 년이라도 더 젊을 때에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앙적인 모험의 삶을 감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신앙적인 모험을 자녀들에게 선물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최상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 마라나- 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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