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시128:1-6)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333회 작성일 2001-04-08 20:28
*들어가는 말

본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형통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개인이나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해 지는 비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근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 시편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사상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형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형통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ꁾ출23:25-26,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그런데 때로는 ‘형통’이라는 말이 기복적인 것 같아서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아마도 ‘무조건 교회에만 나가면, 예수만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형통’의 원인과 범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광수 교수의 ‘개미’라는 콩트가 있습니다.
어느 남자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개미를 기르면서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개미에게 춤을 추게 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일에 너무 집착해 7년여 간을 고생하는 동안, 정신병에 걸렸다고 병원까지 끌려갈 정도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개미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신문에 내려고 신문사로 가다가 배가 고파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성냥갑에 넣어온 개미를 내어 놓았습니다. 종업원을 불러서 “이 개미 좀 보시오.” 했더니, “아저씨 미안해요”하면서 순식간에 손톱으로 싹 문질러 버렸습니다. 식탁에 개미가 올라 와서 너무 미안해 얼른 치워버린 것입니다. 7년 공들인 것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고도 허무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의미 없는 세상사에 얽매이는 사람들을 비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종일토록 수고하고 애쓰지만 그들의 수고는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것일 뿐입니다.
-ꁾ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성도의 일에 대하여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세상 사람의 수고는 헛된 것일까요? 무엇이 다릅니까? 성도의 수고와 세상 사람의 수고가 다른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수고와 오직 자신을 의지한 세상 사람의 수고는,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자신을 의지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원인은 이것입니다.
-ꁾ본문1,2절

ꊉ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것 ꊊ내 손으로 수고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성도의 가장 근본 되는 삶의 자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과 성실로 수고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충만한 기쁨과 만족입니다.

찬송가 204장은 여류 맹인 작시가인 fanny jane crosby(1820-1915) 성도가 작시한 것입니다. 크로스비 성도가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깨닫고 작시한 것입니다. 이 찬송은 생의 기쁨으로 충만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특히 3절을 보면 기쁨의 주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행복이란? 기쁨이 충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애의 최대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며, 실천은 사람의 수고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ꁾ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신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출애굽기 1:15절 이하에 보면,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애굽 왕으로부터 아주 무서운 명령을 받았습니다. 히브리 노예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니까 두려워진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여인을 조산할 때에, 남자아이면 모두 죽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자기들의 목숨은 물론, 모든 친척들의 목숨까지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 왕의 명령을 따른다면, 동족을 배반 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징계가 따를 것입니다. 결국 두 산파는 애굽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택하는 지혜로운 결단을 했고, 그 결과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21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생명을 건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고 하심은 우리 자신을 위함입니다. 신명기6: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범위는 어디까지 입니까?

1) 수고의 대가를 받게 하십니다.
1,2절을 봅시다. 여기에서 형통의 복이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을 말하는 데, 이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시편127:2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당할 일을, 힘쓰고 애써도 정당한 결실을 얻지 못할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형통의 복이라고 해서, 노력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대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며, 여기에 더해지는 은혜를 말합니다.
-ꁾ살후3:10-1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마20:1-16절에 보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 주인은 오전 6시에 일단의 일꾼들을 1일 1데나리온의 약속을 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세 시간 간격으로 계속 오후 5시까지, 일없이 놀고 있는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오후 6시가 되어 일을 마칠 때에, 주인은 모두에게 1데나리온씩을 품삯으로 지불했습니다. 열 두 시간을 일한 사람과 1시간을 일한 사람의 품삯이 똑같이 지불된 것입니다. 당연히 12시간을 일한 사람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약속대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정당한 노동과 정당한 대가에 대한 개념을 밝혀주셨습니다. 정당한 노동이란? 주인의 보시기에 합당한 노동입니다. 정당한 대가는 주인이 약속한 대가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따라 더해지는 은혜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ꁾ마20:13-14,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서 일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주인의 뜻에서 벗어났다면, 이는 정당한 수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7:21-23절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면, 단 한 가지를 하더라도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눅10:41-42).

2) 자손 대대로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가정의 복과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현숙한 아내를 얻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자녀를 양육하는 복을 받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세상의 어떤 재력가나 권세가도 가정과 자손의 행복을 돈으로 살수는 없습니다. 오직 가정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이 가정의 행복을 책임지실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타계한 재벌 회장을 보십시오. 온갖 수고와 노력으로 당대에 거부가 되었지만 가정과 자손의 행복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부인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자신의 죽음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 부인도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재산권 문제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가정과 자손의 행복은 우리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3) 영적인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영적인 복과 함께 국가적인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이며, 성도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본다고 했습니다. 이 복은 어떤 복보다 더욱 중요한 복입니다. 일의 형통이나 가정의 복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지만, 영적인 복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행복을 누리고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살면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만족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주이시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구하고 또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날이 갈수록 성도들의 삶이 복되고 형통하며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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