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나는 누구입니까?(왕상19:1-8)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832회 작성일 2001-02-12 21:24
♣ 들어가는 말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삶의 폭풍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폭풍, 물질적인 폭풍, 자녀들의 문제가 폭풍이 되기도 하고, 가정의 위기가 풍랑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직장과 사회와 국가적인 폭풍도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풍랑은 영적인 위기라는 폭풍일 것입니다. 이 폭풍들은 사람에게 고난과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많은 폭풍들은 자신에 의해서나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이처럼 폭풍이 불고 풍랑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격랑이 일어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대처하는 자세입니다.

소설가인 ‘킹슬리’가 화가인 ‘터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화랑에서 <해상의 폭풍우>란 그림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 그림은 거대한 파도가 살아 있는 듯 했고, 폭풍우가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킹슬리가 "어떻게 이런 명장면을 그리셨습니까?"라고 터너에게 물었습니다. 그 화가는 무엇을 회상하는 듯이 이야기 했습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 한 어부에게 부탁하여 배에 올랐습니다. 배에 오른 저는 배 갑판에 있는 마스트에 나를 단단히 매어 달라고 했습니다. 굉장한 폭풍우였습니다. 배에서 도로 내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폭풍우와 마주 서서 그것을 피부에 느꼈을 뿐만 아니라, 폭풍우의 일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듣고 있던 킹슬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글썽해 있었습니다.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하여 폭풍우를 맞섰던 그의 진지함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이미 푹풍이 밀어닥쳤다면 부딪쳐 오는 거센 삶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배가 부서지도록 풍랑을 맞서든지, 아니면 풍랑에 그대로 떠내려 가야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큰 태풍이 왔을 때, 서해의 작은 섬에는 거의 모든 어선들이 부서지거나 침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한 척만은 온전했습니다. 60이 넘은 노인 어부에게는 그 배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태풍이 거세어지던 날, 그는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배를 띄웠습니다. 밤새도록 작은 산만한 파도와 거센 바람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폭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면서 그렇게 온 밤을 폭풍과 싸운 것입니다. 태풍이 지나 간 아침에 그는 개선장군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구에 배를 정박시켰습니다. 그 항구의 배는 오직 그 노인의 배만 온전했습니다.

의인인 ‘욥’에게 닥쳐왔던 삶의 폭풍은 가히 위력적이었습니다. 온 재산과 자녀와 부인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자신을 오해하며 위로보다는 질책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엄청난 삶의 폭풍을 정면으로 맞섰으며 결국 승리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성경에는 인생에게 다가오는 많은 삶의 폭풍우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 가난, 육신의 고통, 핍박, 신앙적인 위기 등등. 그리고 그 대상들도 왕이나 선지자를 비롯하여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폭풍우를 통하여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에는 능력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신앙과 생활 사이에서 그때마다 편한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을 갈멜산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 850명도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 앞에서 참 신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대결을 벌였습니다. 그 대결에서 지는 쪽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는 엘리야 선지자 한 사람이었고, 우상 쪽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이었습니다. 그 대결은 엘리야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우상의 제사장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우두머리인 왕후 ‘이세벨’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세벨은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분노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복수를 피하여 도망 했습니다. 이세벨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브엘세바’로 갔습니다. 브엘세바는 광야가 시작되는 곳이었으며,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홀로 광야로 나가서 작은 광야의 나무인 ‘로뎀 나무’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습니다.

얼마나 나약한 모습입니까? 바로 하루 전만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이적을 행하여 모든 백성을 놀라게 했던 그 선지자였습니다. 불과 하루만에 엘리야는 생애의 폭풍을 만나서 죽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은 기력이 모두 소진되어 낙담과 절망으로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일이 잘 될 때는 날아갈 듯한 기분에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다가도, 일이 꼬이고 실패가 거듭되면 인생을 다 산 듯이 낙심되고 절망하는 것이 우리가 아닙니까!

그래서 잠언에서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고 하셨고, 전도서에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고 하셨습니다.

먼저, 엘리야의 태도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홀로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기도하고는 누워버렸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 이제는 다 끝났습니다. 나는 결코 선조들보다 나을 바가 없는 정말 못난 놈입니다. 나를 죽여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승리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나라의 모든 우상 세력이 괴멸시키는 그런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세벨의 세력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지금까지 선조들이 겪은 이스라엘 역사의 성공과 실패에서 자신 역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실망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다른 아무런 기도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워서 죽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때때로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지요? ‘중과부적’이라고, 도저히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느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 말입니다. 그런 때에는 기도마저 되지를 않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도, 예레미야도, 요나도, 욥도,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수많은 목회자나 직분자들,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들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진솔한 자신을 보게 되며, 자신의 모든 노력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절망의 지경에서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이 정말로 나약한 한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지쳐 있는 엘리야를 대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그런 태도에 대하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천사를 통하여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보내시며 위로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두 번 거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낙심과 절망에 빠져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를 책망하시거나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즉 ‘믿음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또는 ‘왜 그렇게 힘없이 있느냐?’ 등의 책망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등의 강권하심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으로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셨습니다. 같은 일이 거듭 되었다는 것은, 엘리야가 힘을 얻을 때까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는 말이 그것을 의미합니다. 즉 네가 갈 길이 너무도 멀기 때문에 힘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 일터로 몰아내시거나, 일의 성과만을 생각하면서 닦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시므로 그 모든 환경과 상황을 배려하십니다.
- ꁾ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시103:13-14,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엘리야가 향한 곳은 하나님의 산입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엘리야에게 새 힘이 솟아나게 하셨고, 사십 주야로 광야 길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인생의 일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참 모습을 알게 되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일에 역사하심은 우리 인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큰 이적을 일으키시는 놀랄만한 능력의 나타남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느낄 수도 없는 그런 세미함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진실한 신앙인이 7000명이나 남아있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흔히 신앙의 큰 체험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나타나지 않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것 같고, 하나님이 떠나버린 신 것 같은 그런 절망감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않으시며, 떠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ꁾ합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엘리야가 깨달은 바로 그것입니다. 엘리야는 일에 진전이 없고 절망을 느꼈을 때, 진솔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았을 때,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산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엘리야를 위하여 만나 주셨고, 진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자신을 알고,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진리를 깨달았을 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 앞에서의 자신을 알고, 주님을 알았을 때 비로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어떤 분이시며, 여러분에게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이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맡겨진 생애를 멋지게 꾸며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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