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내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
*** 내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 / 사도행전 8:1-13
사도행전 8:1-13, “1 사울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들어가는 말
요즘은 가히 반려동물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성싶습니다. 자식보다 더 끔찍하게 아끼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교회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어느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오더니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강아지가 나를 따르는 것만큼 내가 하나님을 따랐으면 좋겠어요!” 어리둥절한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자 아이가 설명했습니다. “강아지는 늘 내 마음에 들려고 저렇게 애쓰는데 난 그렇지 못하거든요”
대복교회가 시작되면서 교회 뒷마당에는 한두 마리의 개가 항상 있었습니다. 정말 개는 주인에게 맹목적입니다. 특히 진돗개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료를 잘 먹지 않아서 ‘다음부터 밥을 안 주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면, 주인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열심히 먹는 시늉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의 아이처럼,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고 지금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듣는 시늉조차도 잘 하지 않습니다. 옛 속담에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이익에만 매달린다.’라는 뜻입니다. 정작 중요하게 매달려야 하는 일에는 소홀하고, 사사로운 이익에 관심을 두고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기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일 때문에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수적인 은혜와 능력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 23:16-1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지금 우리가 하는 예배가 맹목적이거나, 목적이 잘못되지 않았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미가 왜곡되거나 목적이 잘못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사도행전은 이름 그대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올라가신 이후에, 제자들의 본격적인 전도행적이 시작됩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많아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천국과 같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능력들이 나타나서 유대인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은 성령 충만함으로 능력을 행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의 시기가 일어나서 성도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의 능력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거짓과 교활한 술수까지 동원하여 박해했습니다. 사도행전 6:10절 이하입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결국 이들은 스데반 집사를 거짓으로 정죄하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증인으로 선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기록이 본문 말씀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박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대대적인 교회 박해가 시작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박해를 피하여 온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사람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박해를 피하여 온 땅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중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갔던 빌립 집사의 전도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통하여,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이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성에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자신의 마술로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스스로 높아져 있었습니다. 이 시몬이 빌립의 능력을 보고 자신도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그 능력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시몬은 빌립에게 돈을 주면서 ‘그 능력을 전수해 달라.’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시몬의 이름을 딴 simony를 ‘성직매매’라는 단어로 사용합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을 알게 하십니다.
※ 내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도행전에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능력을 나타내신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능력을 행한 사람들은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도 있고,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도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세상적인 얄팍한 마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마술사 ‘시몬’도 등장합니다. 시몬은 예수께는 관심이 없고, 다만 신기한 능력에만 매료되어서 돈으로 그 능력을 사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들을 읽으면 두 종류의 사람들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세상을 의존하면서 세상적인 지식과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과 제사장 무리, 사두개인, 바리새인들 대부분은 세상적인 권위와 능력을 과시하는 부류였습니다. 이들이 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죽이려 하고 교회를 박해했겠습니까? 요한복음 12:42-43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이들은 세상을 사랑했기에 하나님의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그 부류였습니다. 그가 잠시 빌립 집사를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빌립이 행하는 능력이 탐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시몬에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빌립 집사와 사도들이 행하는 표적과 능력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진정한 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배우거나 습득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마태복음 10: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7-8절에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신다는 표시입니다. 예수께서 칠십 명의 제자를 전도대로 보내셨을 때, 제자들이 돌아와서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0:20절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즉, 귀신들이 항복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신다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 내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옛 철학자들은 ‘사람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라고 스스로 물었습니다. 이것은 ‘삶의 목적에 대한 인간의 고민’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무런 목적 없이 산다면 영혼 없는 짐승들의 생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시몬처럼 육신의 목적만 가진 사람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시몬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사고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몬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고, 또 병자가 나음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대단히 놀랐으며 자신도 믿고 세례를 받아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사람들에게 안수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제안했습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시몬은 돈을 들여서라도 자기가 안수(按手)하여 사람들이 능력을 받게 하는 신기한 재주를 갖고 싶었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향하는 진실한 믿음이 없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 안에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게 하려면, 하나님께로 향하는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9:23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따라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밭에 식물이 잘 자라게 하려면, 땅을 잘 갈아 잡초를 없애고 돌을 걸러내고, 거름을 넣어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하려면, 내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안드레이 비토프(Andrei Bitov)는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생의 뚜렷한 목적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의 큰 변화를 가져올 사건을 경험합니다. 그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어느 날, 나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성 베드로의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나도 절망하여 그 순간 삶이 멈춰버릴 것 같았고, 나의 미래는 통째로 없어질 것 같았다. 삶의 의미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하나님 없이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Without God life makes no sense).' 나는 그 구절을 계속 되새기며, 그 구절을 계단 삼아 절망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한 걸음씩 들어가게 되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지 아니하시고, 거하시더라도 하나님이 주인 되지 않으시면, 삶은 목적 없이 떠도는 바람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따르는 세상적인 목적으로 산다면, 세상에서는 성취감을 느끼고 삶의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을 따르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 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목적으로 살면 이렇게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라고 그리스도인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15절에서는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시며, 베드로전서 4:2절에서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기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내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무엇을 위하여 사셨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한다면,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누구를 만나며,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하십니다.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살아야 하며, 한 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이 험한 시대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의 사람으로 생명의 영향력을 나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