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질 때
***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질 때 / 사사기 2:16-23
사사기 2:16-23,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 하였은즉 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이 조상들이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셨더라.”
※ 들어가는 말
어릴 때 연날리기 해보셨지요? 요즘은 아이들의 놀이가 바뀌어서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연날리기랑 인생살이가 닮아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연이 잘 날게 하려면 무게도 적당해야 하고, 목줄의 위치도 적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은 바람이 없는 날이면 띄울 수가 없습니다. 연은 잘 떠오르다가도 너무 센 바람을 만나서 줄이 끊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곤두박질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나름대로 성공을 위하여 배우고, 훈련받고 준비하여 세상으로 나갑니다. 좋은 기회를 잡으면 높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실패하여 처참하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매양 성공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늘 실패만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연이 바람 없이 날 수 없듯이, 우리 인생도 어려움을 통하여 더욱 성숙한 삶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 7:14절에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삶이 형통할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 속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기의 기록입니다. 이 시대를 사사 시대라고 부릅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명을 수행하는 통치자였습니다. 사사는 선지자였으며 동시에 제사장이었고 왕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자 아직 점령해야 할 가나안 땅은 많아서 지파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땅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지파마다 쫓아내지 못한 일부 민족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강성해지면서 노역하는 사람들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방 민족과 어울려 살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인들과 통혼을 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앞쪽의 11-15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방 민족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이방 민족을 남겨두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가 본문 22절에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이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지를 시험(Test)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만을 섬기고 순종한다면 형통하게 될 것이지만,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미리 경고하신 대로 고통과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알게 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 어떤 결과라도 반드시 원인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불을 때니까 연기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는 이유를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쉽게 표현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에서의 만족과 풍성함을 추구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 말씀은 인생 삶의 본보기입니다. 로마서 15:4절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0:11절을 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렇게 성경의 기록 목적을 우리 삶의 본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도 불순종으로 말미암는 삶의 고통이 따름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했지만, 일부 점령하지 못한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가나안의 이방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1-5절을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5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사실을 지금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이유는, 오늘의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셨더라.” 이스라엘이 이러한 고통의 원인을 만들지 않도록 경고판을 만들어두셨다고 하십니다.
실제적인 사건을 봅시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품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뜻을 나타내시며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들 솔로몬 때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하 7:13-14절입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 하려니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미리 경고하십니다.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이란, ‘사람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과 생활로 말미암는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되돌려 보면,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생활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졌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통치 말기에 하나님을 떠나고 그 많은 처첩들이 들여온 우상 숭배를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 하닷, 르손을 일으키셔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 흥왕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을 끝으로 그의 아들 르호보암부터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가 힘들고 어려워진 원인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고 우상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지금 우리에게 전하시는 이유가 이렇게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을 만들지 말라는 경고와 가르침입니다.
※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폭풍이 불어오는 날, 자그마한 어촌에는 폭풍을 피하려는 배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평생을 바다에서 산 노련한 나이 많은 어부가 있었습니다. 늙은 어부는 아내와 자식들이 만류하는 것도 뿌리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속도로 먼 바다로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온몸이 물에 젖으면서 거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았습니다. 날이 밝아오면서 폭풍은 물러갔습니다. 늙은 어부는 지친 몸으로 뱃머리를 돌려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항구에는 지난밤의 폭풍으로 모든 배들이 부서지거나 침몰했습니다. 그 어촌에서 부서지지 않은 배는 오직 늙은 어부의 배뿐이었습니다.
왜 항구에 정박한 배는 부서지거나 침몰했는데, 먼 바다로 나간 배는 안전했겠습니까? 파도는 깊은 바다 위에서는 별로 위력이 없습니다. 그 깊은 물을 다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파도의 종착지인 해안입니다. 그래서 항구마다 방파제를 만들어 파도를 막는 것입니다. 늙은 어부는 그 이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폭풍을 맞서 먼바다로 갔던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피하거나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이 조상들이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실 때는 피하거나 도망하면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라는 신호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어려운 환란은 은혜를 받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했습니다. 불을 피우려면 반드시 연료가 있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영의 생명의 꽃을 피우기 위한 것입니다.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가네.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입니다. 이사야 55:6-7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설령,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를 받았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면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고치십니다. 이사야 19:22절에서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갑니까?
16세기의 카르멜회 수사였던 ‘브라더 로렌스’는 오랜 세월 동안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주님의 일로 여기고 지속적인 사랑으로 순종하고 실천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생활 속에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배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의 회고록의 글을 옮겨봅니다.
“나는 번철 위의 오믈렛을 뒤집을 때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를 줍는 일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임재(동행)하심을 느끼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할 때도 그 사랑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좀 더 쉽고 직접적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데는 복잡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정직하고 단순하게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로렌스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연구하거나 많은 책을 읽거나, 고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늘 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자기의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즉 일상적인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주님의 사랑을 순종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일하는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입니다. 만일,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솔로몬이 겪었던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째고 도려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회복을 위하는 손길입니다. 잠언 3:12절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3: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질 때는, 1) 내가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을 행하지 않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며, 2)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임을 알고 하나님 은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천사들을 통하여 일일이 점검하시며,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가장 최선의 길을 나타내십니다. 우리의 영이 늘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신호를 잘 분별하여 안전하고 형통한 생명의 길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