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에베소서 4:17-24
에베소서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 들어가는 말
2025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심이 하나님의 존귀한 성도 된 여러분의 삶을 이끄시기를 축복합니다. 2025년을 열면서 주시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길입니다. 본문 19절에서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았던 대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삶의 길이 하나님의 풍성함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골로새서 1:19절에서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 만이 영과 육신의 모든 것을 채우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2025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하면서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도록 우리의 모든 생활을 맞추어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의 본질에 관하여 자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하여 파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제는 세상 욕망을 따르는 옛사람의 습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의 습성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본문 23절의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영의 생명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으로 결단하기를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옛사람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세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고, 새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뜻합니다. 즉 육신의 욕망대로 방탕하게 살던 삶에서 떠나, 하나님이 지으신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옛사람의 습관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 옛사람의 습관대로 살면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거짓된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먼저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하인과 함께 여행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흙이 묻은 신발이 다음날에도 여전히 더러워져 있자 주인은 하인을 불러 ‘앞으로는 신발을 닦아 놓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차피 신발을 닦아 봤자 주인님께서 나들이하시게 되면 다시 더러워지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습니다. 그날 오후, 어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식당 주인에게 1인분의 식사만 주문했습니다. 하인은 당황해하며 ‘주인님을 모시고 다니려면 자기도 밥을 먹어야 한다.’라며, 무척 배고픈 시늉을 했습니다. 주인은 하인의 그 모습을 보며 말했습니다. “저녁은 먹어 뭣하나? 내일이면 다시 배가 고파질 텐데…” 하인은 아침에 했던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흔히 등산을 왜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어차피 내려올 산 뭣 하러 올라가나?”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등산을 비난하는 사람이나, 예화의 하인이나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발상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에도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예배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렇게 안 해도 괜찮은데 별스럽다.’ ‘예수를 적당하게 믿어야지 별나게 믿으면 안 돼.’ 이처럼,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남는 시간에나 하는 것쯤으로 여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신앙생활은 사활(死活)이 걸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일입니다. 예수께서 ‘밭에 묻힌 보화 비유’ ‘값진 진주 장사 비유’를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서라도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귀중한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가장 귀한 주인으로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지식이나 이론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활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면서,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하십니다. “새사람을 입는다.”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생활을 이루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보이신 삶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6-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고 베드로후서 3:18절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6: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하시며. 디모데전서 2:4절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요한복음 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 못하고,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당연히 주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신 기간은 겨우 30년입니다. 그나마도 성경에 밝혀져 있는 기간은 불과 3년 정도입니다. 즉 공생애 기간이라고 부르는, 예수께서 세례받으시고 공식적으로 활동하신 기간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본으로 보이신 삶의 모습은 4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생애 동안 예수께서 행하신 일 중에서 구원을 이루신 일은 예수님의 고유한 목적이므로 우리가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외에 우리에게 삶으로서 보이신 일들에서 우리가 따를 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가운데 가장 모범 된 요소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6:38절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5:30절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삶의 본질은 ‘순종’이었습니다. 이 순종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6-8절에서 표현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부르시고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 보내신 아버지께 온전하게 순종하셨듯이, 우리는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주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꼐서 보이신 모범 된 요소는 ‘겸손’입니다.
마태복음 11:28-30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의 겸손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사람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 겸손을 우리에게 예표 적으로 남기신 가장 큰 일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2하-1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세족식이라 부르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입니다. 이 겸손을 가르치시고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16-17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보냄을 받은 자” 즉 우리가 예수께서 보이신 본을 잘 따르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다음으로 예수꼐서 보이신 모범 된 요소는 예수께서 이 땅에 행하신 사역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4:23절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의 삼대 사역입니다. ‘가르치심, 복음 전파, 사회봉사’ 이 일은 복음서 전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사회 약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목사나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주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님에 관하여 알려주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교회의 목적이기도 하며,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상급이 걸린 중요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내 생활에서 주님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것, 복음을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선교사나 선교의 일을 위한 물질로 기도로)가 전도의 일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본받아 따른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렇게 작정하고 다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본받아 따르는 일은 마음 씀씀이, 말하는 것, 주변을 돌아보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본받아 따르기를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행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니엘 10:12절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이나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결심도 아십니다. 이렇게 세상을 따르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으며,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는 길입니다. 내 삶을 새롭게 일으킬 마음이 있다면 시작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2025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