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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인생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71회 작성일 2024-06-23 16:51

***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인생 / 야고보서 1:19-25

 

야고보서 1:19-25,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들어가는 말

 

자유! freedom!

사람이든지 어떤 생물이든지 무엇에 속박받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은 자유를 갈망합니다. 지금 북한에도 ‘자유 조선’이라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제 더는 억압당하고 살 수는 없다.’라고 외치며, 저항 운동을 합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13세기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윌리엄 월리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전쟁 영화입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브레이브 하트의 명대사’가 많은데, “그들은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지는 몰라도, 결코 우리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지만, 모든 사람이 진정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윌리스가 동료의 배신으로 처형을 당할 때, 오른손을 높이 들면서 외쳤던 ‘Freedom!’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유를 갈망하지만,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매이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에 매이고, 자식에게 매이고, 일에 매이고, 명예, 권력, 병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유롭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인생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시며, 36절에서는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매이는 것이 너무 많아 피곤한 우리 삶에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길을 살펴보려 합니다.

 

※ 본문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야고보서는 주의 형제 야고보가 기록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일반적인 편지입니다.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특별한 인물은 12사도 중에 둘, 주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사도 다대오의 아버지 야고보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유력한 사람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전도에 나선 베드로를 대신하여 그 지도를 맡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서의 특징은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산상수훈과 닮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 복음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는 교리적인 해설을 하지 않고, 복음을 신앙의 결과인 행위로 표현했습니다. 야고보가 이런 면으로 기록한 이유는 환난을 겪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동시에 이론적인 믿음에 빠져서 실천하는 삶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 말씀처럼, 야고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믿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실천을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특별히 경계합니다. 그래서 2:20절 이하에서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을 자유롭게 하지만,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함을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누리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 먼저, 나 자신의 자유로움을 점검해 봅시다.

 

처음 들었을 때 복음송인 줄 착각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노사연(온누리교회 집사)의 ‘바램’입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사람들이 이 노래에 매료되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는 ‘처지가 이해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상은 이렇게 매이는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매이는 것 없이 자유롭습니까? 요즘처럼, 세상의 변화가 너무나 빨라 적응하는 것도 스트레스이며, 세상의 일이 자기 생각대로 잘되지 않으니 이것도 스트레스가 됩니다. 스트레스(stress, 긴장 또는 짜증)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받는 자극으로 일어나는 정신적 부담이나 압박을 뜻합니다. 사람이 외부에서 압력을 받으면 긴장, 흥분, 각성, 불안같은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런 것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서 원상 복귀하려는 반작용을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염려나 두려움, 분노에 매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몸이 굳어지면서 혈액 순환이 잘 안 되고, 소화 장애와 두통이 일어납니다.

 

미국의 ‘월프’박사가 분노에 대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 위장의 점막이 충혈되고, 운동이 증가 되며, 위산분비가 많아져서 마침내는 위출혈과 장 출혈, 궤양을 초래한다.’라고 합니다. 대장염의 96%가 분노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분노는 혈관을 갑자기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므로 뇌출혈 등의 위험을 가중한다고 합니다.

‘존 헌터’라는 유명한 생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학회에서 자신의 학설이 공격을 당하자 너무나 분해서 반격을 하려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결국 사망했습니다. 사망원인은 ‘분노로 인한 심장혈관의 순환장애’였습니다.

 

분노는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더욱이 숨겨진 분노는 사람의 뼈를 마르게 합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세상으로부터 자유 하지 못하는 우리의 욕망이나 염려와 두려움 때문입니다. 잠언 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잘 다스려서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본문 19-21절을 봅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19-20절에서는 분노의 심각한 폐해를 말씀하고, 21절에서는 분노를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는 나를 얽어매는 세상의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자기 마음을 제어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행동을 제어하는 사령탑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4:23절입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이 행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일으키는 ‘뜻과 마음을 살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제어하여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제어하여 세상의 것에 매이지 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2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내 생각에서부터 말과 모든 행동까지 제어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아는 길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좌우하는가?” 시편 기자가 119:105절에서 고백한 내용이 내 고백이 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마음을 제어하여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채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내 마음에 채우는 길을 봅시다. 본문 19절입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듣는다.’라는 말은 ‘순종한다.’ ‘깨닫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는 행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듣는 귀는 있어 말씀을 듣기는 잘하지만, 생활에서 실천하는 순종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본문 22-25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즉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관하여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성경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5:22-2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을 보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실망감과 함께 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겸손할 때,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받은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림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5:22-2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이 말씀을 현대적으로 바꾸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최상으로 예배하고, 많은 예물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없다면 버림받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저의 목회 사역에 중요한 지표를 제공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리이튼 포드’ 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여행 중에 비행기가 연료 보급을 위해 착륙한 서부 아프리카 다카 공항에서 어떤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짧은 시간, 그 프랑스 출신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선교사는 ‘무슬림 지역에서 10년 동안 사역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포드 목사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심자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두 명”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십 년 선교 활동 중에 2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10년 동안 겨우 두 사람밖에 구원하지 못했는데, 왜 이곳에 있느냐?’라는 의아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교사는 매우 놀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왜 있느냐구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리이튼 포드 목사님은 ‘이 일은 자신의 생애 속에 일어난 일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사역의 열매가 단 2명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두셨기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고,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교사는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이며, 저를 지금까지 사역하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어떤 것에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며,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안에서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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