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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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합시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79회 작성일 2024-05-19 17:14

***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합시다. / 마가복음 6:30-44

 

마가복음 6:30-34(44),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들어가는 말

 

성경은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은 무서운 율법, 전쟁과 동형보복법(이에는 이, 눈에는 눈) 등.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무서운 이야기 속에는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녹아있습니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듯한 각종 제사법, 절기와 안식일, 희년 제도 등은 오히려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물에 약하십니다. 다윗이 충신이었던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하여,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을 때,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보셨고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교만하여 죽음을 준비하라는 경고를 받았을 때,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눈물도 보셨고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셨습니다. 성전 파괴와 우상 숭배, 수많은 백성을 죽여 악명을 떨치던 므낫세 왕조차, 하나님을 깨닫고 크게 겸손하여 간구했을 때, 이것마저도 용서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피조물인 사람을 살려주시려고 속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이신 하나님을 가깝게 닮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님께서 염려하신 말씀처럼,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사랑이라도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 이야기의 서론 부분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 이야기는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지만, 이렇게 서론이 붙은 곳은 마가복음뿐입니다. 이 이적의 이야기가 있기 이전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도록 여러 지역으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전도사역을 마친 후 돌아와서 예수께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그때, 수고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30-31절입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이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벳세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가버나움에 있었던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30KM 정도나 되는 먼 거리를 쫓아왔던 것입니다.

 

그 무리의 갈급함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께서 여러 가지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음을 아시고,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무리는 영의 풍성한 양식을 먹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육신의 배고픔과 피곤함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이 일어난 동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박해와 삶의 고통으로 찌들어버린 무리에게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과 육신의 양식으로 쉼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은 교회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노래, 드라마, 영화, 관심거리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과는 좀 다릅니다.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서 표현하는 사랑에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에로스(eros, 쾌락을 추구하는 성적인 사랑), 스톨게(storge, 부모와 자식, 혈육의 사랑), 필리아(philia, 친구와의 우정), 아가페(agape,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헌신적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말씀에서 ‘필리아’와 ‘아가페’를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의 대답에서 모두 ‘필리아’만을 사용했습니다. 성경 이외에 세상의 어떤 문헌에도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한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아가페로 표현되는 무한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끝까지 ‘필리아’로만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랑을 해야 합니까?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103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국립묘지 옆에 묘지를 찾아오는 유가족들에게 꽃을 파는 꽃가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가게 옆 길거리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꽃다발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저녁이면 국립묘지를 돌면서 묘지 앞에 놓여 있는 꽃다발들을 모아 와서 다음 날이면 다시 팔았습니다. 묘지에 헌화하는 꽃들은 거의가 조화이기 때문이지요. 그 사실을 안 꽃가게 주인 아들이 분개하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고발해요. 그럴 수 있어요? 남의 묘지의 꽃다발을 갖다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겨울,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묘지를 찾는 이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수입이 없어졌습니다. 그 날 그 꽃가게 주인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묘지 여기저기 뿌려놓고 왔습니다. 저녁 무렵, 그 꽃다발을 주우러 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꽃가게 주인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진한 이웃 사랑에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요한복음 13:34-35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나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제자 됨을 나타내는 표현도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 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아무것도 아닐 뿐이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고 생각한다면,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정에서의 사랑 실천은 사랑의 기초가 되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옛말에 “안에는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깝고 허물없이 사는 가정에서 사랑이 실천되지 않으면, 사회에서의 사랑은 거짓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거짓입니다. 요한일서 4: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사랑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토마스 고든 박사(1918~2002)의 이야기 중에 한 토막입니다.

그는 회고담에서 중학생 때의 잊을 수 없는 일을 기록했습니다. 자기가 14살이고 동생이 11살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서커스에 데려가겠다.’라고 하셔서 모두 흥분해 있었습니다. 막 출발하려는 찰나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친구인데 ‘중요한 의논이 있으니 곧 나와 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곁에서 말합니다. “중요한 일이니 나가 보세요. 서커스는 또 올 거예요.” 고든과 동생이 무척 실망이 되어 포기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서커스는 또 올 것이지만, 저 아이들의 소년 시절은 다시 오지 않아요. 사업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약속은 지켜야지.” 당시에 고든은 중학생 소년이었지만, 아버지의 그 말씀이 얼마나 기쁨과 감동이었든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는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가정에서 가족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사랑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신뢰와 배려, 이해와 관용의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틈도 없이 사람들 대하는 것을 보시고,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일은,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향하여 관용과 용서를 나타내셨으며, 독자의 죽음으로 애통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상여를 멈추게 하시고 살려주심으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라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지금,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가지는 것조차 외면합니다. 다른 사람은 하지 않더라도, 나 하나라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합시다.

 

미국 미주리(Missour)주,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미용실입니다. 그날따라 많은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하나같이 삭발을 요구했습니다. 손님들은 그 마을의 50여 명 정도가 출석하는 작은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미용사는 이상한 광신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암으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마친 소녀가 교회를 나오지 않자, 목사와 몇몇 교인들이 병문안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린 머리 때문에 창피해서 외출을 못 한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로 돌아온 목사와 교인들은 모두 머리를 깎기로 했습니다. 이 사연을 듣고 감동한 미용사는 방송국에 연락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소녀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했습니다.

주일, 엄마는 소녀를 간곡히 설득하여 모자를 씌워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교회 문을 연 순간, 모든 교인이 빡빡머리인 것을 본 소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 상황을 중계하던 리포터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 교회를 나가게 된다면 이런 교회를 나가고 싶습니다.” 방송을 보던 많은 사람 역시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갈수록 신앙이 변질하고 삭막해져 가는 사회에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여 주님을 나타내고 전합시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우리의 생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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