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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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선의 삶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84회 작성일 2024-03-26 17:07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선의 삶 / 베드로전서 4:7-11

 

베드로전서 4: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 들어가는 말

 

생각하게 하는 우화입니다.

어느 집에서 개를 길렀는데 한 날은 밤에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훔쳐 갔습니다. 그런데 개가 도둑이 들어온 것을 보고도 멍청하게 보고만 있고 짖지를 않았습니다. 괘씸하고 어이가 없는 주인이 개를 잡아놓고 야단을 쳤습니다. “야 이 개 삐리리야, 도독이 오면 짖어야 할 것 아니냐. 왜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 거야? 응? 밥값을 해라 밥값을…” 그러자 듣고 있던 개가 냉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도둑인지 분간이 돼야 말이지요! 주인이 도둑인지 도둑이 주인인지 혼동이 돼서 짖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안 짖기로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이 시대가 하도 혼란스러워서 개도 도둑과 주인을 분별할 수가 없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단 한 번의 생애가 주어져 있습니다. 잘 못 살았다고 물건을 사듯이 무르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의 우화처럼 개도 헛갈리는 헛된 삶이 아니라, 신중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후회를 남기지 않을 삶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선의 삶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천명한 요리 문답 제1번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며, 답변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계명을 예수께서 마태복음 22:37-4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즉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인 베드로 서신은 사도 베드로가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이 지역 중에서 갈라디아와 아시아는 바울의 선교지역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의하여 박해와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해가 더욱 심해지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성도들에게 신앙을 잃지 않도록 복음의 진리와 종말의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위급한 환경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나타내도록 격려하고 권면합니다.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인 12절에서 이 내용을 밝혀줍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이 격려의 편지를 쓰고 있는 베드로 자신도 이 편지를 쓴 직후에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이 더욱 믿음 안에 굳게 서서 담대해야 함을 실감하게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아마도 이 구절이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런 박해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느슨하게 만드는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삶이 되겠습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삶의 길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인생 지도를 그리며 삽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 혹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잠언 16:2절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의 생각까지를 포함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살피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라고 하시며, 고린도후서 5:10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인생을 책임성 있게 살아야 합니다. 즉 인생의 끝에서, 혹은 하나님 앞에 설 때, 후회를 남기지 않는 최선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과자 집을 운영하면서 직접 과자를 굽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 과자 집에는 과자를 사려고 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손의 움직임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과자 굽는 손길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무슨 마술을 보는 듯했습니다. 얼굴에는 항상 평온함이 가득하고, 온 몸짓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마음이 우울하던 사람도 그 과자 집에 들르면 금방 마음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일하고 있다기보다는 아름다운 율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했으며, “기름칠한 듯한 탱탱한 삶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궁금하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과자를 구우면서 곧잘 “결코 어제와 같은 과자를 굽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새 모습으로 살아서, 어제보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과자에 새겨 넣고 싶다’라는 말입니다.

 

별것도 아닌 과자 굽는 일이 사람들을 밝게 하고, 힘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일 년이면 한두 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기도드리고 싶은 과자가 구워졌어요. 이런 과자를 굽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어요. 손님에게 팔기에는 너무 귀한, 그래서 하나님께 고이 바쳐서 제사 드리고 싶은 과자예요.”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모습이 아름답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환경’과 ‘재능’과 ‘부족한 물질’, ‘건강’ 등을 내세웁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생명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것’이 실제로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면 결코 이러한 핑계로 허송세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한 일에 쓸 수 있는 돈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일할 수 있는 건강이 항상 있지도 않고 모두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기회와 시간도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최선과 최상의 삶에 관하여 긴박하게 말씀하십니다. 내용 중에는 ‘기도’와 ‘사랑’과 ‘대접하는 것’과 ‘봉사’, 이 네 가지가 대표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를 포함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긴박하다는 표현은 본문 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할 일들입니다.

 

본문 8-10절을 현대어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언제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허기지고 잠잘 데 없는 사람을 보거든 집으로 데려다가 따뜻하게 대접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개역 성경에서는 “열심으로 사랑하라.”라고 번역했고,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번역했고, 현대어 성경에서는 “깊이 사랑하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열렬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쉽게 표현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사랑으로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더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특별한 능력)를 활용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며 섬기며 봉사하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행한 일들을 주님 앞에서 결산할 때, 자신이 받은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서면 책망과 함께 끔찍한 선고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26-30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하여 내게 주어진 능력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를 생각하게 했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우석대학교 문예 창작 교수이자 작가인 ‘안도현’ 시인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집의 첫 번째 시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입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단 두 문장으로 된 짧은 시이지만, 많은 사람을 생각하게 한 수작입니다. ‘연탄재’로 표현된 것은, 뜨거운 열정을 바쳐 자신을 하얗게 사르고, 재만 남은 희생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즉, 더는 사용 가치가 없어져서 버려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너는 연탄재처럼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해 보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연탄처럼 다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고 배려하고 봉사해보지 않았다면 연탄재를 발로 찰 자격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에 비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따뜻한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내 앞가림만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책망과 함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신 디모데후서 4:2-5절을 봅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직무에서 흔들리지 말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의 결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일에 충성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을 눈여겨보시며, 능력과 필요를 채우십니다. 우리도 이러한 최선의 삶으로 이 시대를 능력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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